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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category 추천도서 2019. 1. 3. 11:14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 이석원 산문

2019년 새 해가 밝았어요.
2019년 기해년. 음양오행상 60년만의 '황금돼지해'라고 합니다.

출산율이 점점 낮아져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데, 올해는 좋은 해인 만큼 많은 새 생명의 탄생을 조심스레 기대해봅니다.

지난해의 나쁜 일, 마음 상했던 기억 모두 훌훌 털어버리시고, 새로운 해! 새로운 마음으로 힘차게 시작하시길 바랄게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고 뜻하는 일 이루시길...

2019년 새 해에 첫 리뷰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산문집으로 시작하게 되었네요.

 여덟 권의 얇은 책을 만들어 그 안에 삶의 정면이 아닌 측면을 담고 싶었다는 작가의 산문집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은 8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부 그해 여름
2부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엔
3부 엄마의 믿음
4부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5부 배려
6부 스며들기 좋은 곳
7부 마음이란
8부 마지막 순간

지금 내 곁을 스쳐가는 찰나의 순간에 어쩌면 생의 진실이 있다고 믿고 있는 저자는, 그 하나하나의 순간들을 사진 찍듯 글로 잡아채어 독자들에게 각기 다른 색깔을 지닌 여덟 권의 에세이를 읽은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자신의 일상을, 주변의 소소한 이야깃거리를 진솔하고 담담하게 적어나간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저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내 일 같고, 저자가 겪고 있는 감정이 내 감정 같은 묘한 동질감과 격한 공감을 하였네요.

특히 '젊음'을 이야기할 때 정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젊었을 때는 밤 새워도 끄덕없고, 사탕도 아그작 아그작 깨물어 먹고, 찬물도 벌컥벌컥 마실 수 있었고, '아이고 무릎아' 하는 소리 한 마디도 안 했으며, '한약은 왜 먹어. 그 쓴 것' 했는데 요즘은 좋은 것 있으면 챙겨먹게 되고,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도 며칠씩 골골대고 기어이 한번 더 병원에 가야하고, 계단 좀 오르면 무릎이 아파 '에고고' 하는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차갑고 딱딱한 건 먹을 생각조차 안 하고, 잠을 많이 자고 일어나도 몸이 개운치 않는 것이 여기저기 삐걱 삐걱 망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 
(나보다 더 나이가 많으신 분은 "이구, 아직 팔팔할 때구만, 죽는 소리를 하고 있어. 망할 것" 하시겠지만,)

이런 것들이
모든 것이 무한한 줄로만 알고 젊었을 때 몸을 아끼지 않았던 대가인가?
아니다
'바로 나이가 들었다는 것.'

젊었을 때는 빨리 나이 먹어 이 고달픈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는데, 지금은 그 고달픔에 더해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지. 해 놓은 것도 없이, 아직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어느 새 또 한 살을 더 먹어 버렸는지.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지 숫자가 늘어나고 얼굴에 주름 몇 개가 늘어가는 일이 아니었음을. 그래서 노력하고 씩씩해지지 않으면 그 무게에 언제고 잠식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일임을.

나이가 먹는다는 건, 몸만 여기저기 고장나고 축 나는 게 아니라, 삶의 무게에 눌려 점점 나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 다시 새로운 삶을 찾으려 발버둥쳐야하는 씁쓸하고 애잔한, 굽어진 등이 더 굽어질 수도 있다는 것.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만 회피할 일만은 아니라는 것. 그래서 지금 더더욱 내 자리에서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야하며, 내 자신의 몸과 마음 모두 잘 지켜내야 된다는 것.

나보다 일이십 년이나 젊은 독자들에게 지금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지점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당장은 그것이 젊음인지도 자유로움인지도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바로 그 때임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일어나 한걸음 뒤로 물려나 자신을 한 번 타인이 되어서 봤으면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그런거 있잖아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제일 나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나에게만 오는지,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이 보면 그 상황은 그냥 조금 안 좋은 일일 뿐, 조금만 노력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아주 조금만 일일 수 있잖아요.

타인에게는 문제 될 것도 아닌 일이 자신에게 오면 아주 크나큰 문제로 변해버리는거죠. 운명의 장난처럼.

젊음을 이야기하다가 왜 여기까지 왔는지.ㅎㅎ

자신의 상황을 너무 예민하게 크게 확대해석하지 말고, 조금은 가볍게, 너무 거창한 의미 부여하지 말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니, 좀 더 젊게 그리고 젊음을 느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렇게 길게 늘어놓았네요.

이석원의 <우리가 보낸 가장 긴 밤> 저자의 이야기이면서 우리네 이야기인 듯, 그래서 공감과 위로가 된 책이었어요.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서 적어봅니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아름다운 것들로 돌파하기 위하여"
<출발> 중에서

"어쩌면 삶 전체를 통틀어 좋게좋게 웃음과 예의로서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이 공허한 인간관계에서, 나로 하여금 솔직함을 이끌어 내줄 수 있는 사람,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이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이고 행운인지를.
<솔직할 수 있도록> 중에서

"대화란, 내 말이 맞음을 일방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느 때는 일치의 쾌감을 얻기도 하고 어떨 때는 다름의 묘미를 깨닫기도 하는, 말로 가능한 최고의 성찬이다. 서로를 신뢰하기에 의견이 달라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말의 부딪침 속에서 대화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게 바로 통하는 사이가 아닐까?"
<> 중에서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하지 않을 자유> 중에서

"우리들의 아늑한 보금자리는 어째서
다른 가족들이 떠민 일을 누군가 떠안는 희생과 수고로 지탱되어올 수밖엔 없었던 걸까."
<엄마> 중에서

"일상은, 일상의 평화라는 건, 노력과 대가를 필요로 할 만한큼 힘겹게 지켜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것이더라."
<행복> 중에서

"그거 아니?
한숨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상하게 한다는 걸."
<한숨> 중에서

"친구건 연인이건 지인이건, 누가 내게 어떤 사람인가는 그 사람과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내 기분을 보면 알 수 있다. 누가 날 더 허탈하고, 씁쓸하고, 외롭게 하는지, 누가 날 진심으로 충만하게 해서 만남의 여운이 며칠은 가게 만드는지.
<알게 모르게> 중에서

"만병의 근원이자 살아 있다는 증거."
 -스트레스-

[나의 삶을 이루는 아무리 작은 것에도
침묵하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