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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경애의 마음

category 추천도서 2019. 1. 25. 07:00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장편소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라는 책으로 김금희 작가를 알게 되었어요. 열아홉편의 짧은 소설에 사랑, 이별, 우정, 일, 청춘, 그리고 행복!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고,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이야기이기에 공감을 많이 했던 책이었어요.

책을 덮으면서 또 다른 김금희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마침 '경애의 마음'이라는 장편소설을 알게 됐어요.

김금희 첫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

이 책에서 주축이 되는 주인공인 한 사람, '상수'

반도미싱 영업부에 팀장대리인 상수, 아버지가 전직 국회의원이자 반도미싱 회장과 재수학원 동기인지라 낙하산으로 어색한 직함인 '팀장대리'를 단 상수

그는 영업을 할 때 미싱을 보여주는 대신 미싱을 환기할 수 있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위해 '실'을 갖고 다니면서, 실이 기계와 멀고 아날로그적이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는 감정적 영업을 하는 사람으로 다른 입사동기와는 달리 팀장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팀장대리라는 어색한 직함으로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제인 에어>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만큼 감성적인 사람입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반도미싱에서 8년 차인 총무부 직원 '경애'

겅중한 키에 언제나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면서 마주치면 고개만 까딱 숙이고, 이중주차를 해놓으면 그 차가 어떤 간부의 차라도 빼 달라고 전화를 거는, 점심식사 후 산책을 하며 계속 줄담배를 피우는 독특한 여자.

그리고, 3년 전 실패한 파업으로 홍보부에서 총무부로 전보되면서 회사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는 '경애'

그 둘은 영업부 팀장대리인데 팀원이 없다는 상수의 항의로 회사에서 밉게 보는 총무부 경애를 영업부로 보내면서 회사 루저인 둘이 영업3팀으로 묶여 만나게 됩니다.

"좀 친해집시다."
"네, 친해지세요."

좀처럼 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두 사람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존중해주면서 더 나아가 애틋한 마음으로까지 갈 수 있었던 건 영업3팀으로 만나기 전 훨씬 이전부터 그 둘을 이어 온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대학 선후배 사이였던 경애와 산주, 6년간의 연애가 산주가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면서 끝이 나고, 그 이별의 후유증으로 경애는 인턴으로 다니던 무역회사도 그만두고 그 해 여름 내내 집에 틀어박혀 씻지도 설거지도 빨래도 요리도 하지 않은 채 무기력에 빠져 일상을 버티면서 그나마 유일하게 했던 일은 연애를 상담하는 페이스북에 편지를 쓰는 일이었어요.

경애가 보낸 편지에 약간은 무성의한 답변을 보내곤 한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 운영자 '언니'를 몇 년 뒤 경애는 반도미싱 회사에서 만나게 됩니다.

반도미싱 영업부 팀장대리 상수는 낮에는 낙하산이라는 오욕으로 지내다 밤에는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연애상담 페이지를 팔년째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 '언니'로 여자들의 여러 사연들이 적힌 편지를 받고 위로하는 답장을 보내는 일이 걸핏하면 고독사를 상상하는 상수에게는 삶의 의미인 만큼 중요한 일이죠.

그렇게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상수와 아직도 산주를 자신의 삶 속에서 버리지 못하는 경애가 영업3팀 팀장대리와 팀원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또 그 둘 사이에 모르는 연결고리 하나가 더 있습니다.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은 두 사람, 경애는 그 화재 사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이기도 하죠.

둘 사이의 연결고리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둘은 서로에게서 발견된 슬픔과 고통을 공유해갑니다. 회사에서 페이스북에서, 한국과 베트남에서, 과거와 현재에서 서로의 삶과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고 알아주면서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경애의 마음>은 경애와 상수의 사랑이라는 소재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각으로 보면 여러 소재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도미싱의 부당함에 맞서 벌이는 파업과 그 파업에 가담한 동료들 중 특히 '조선생'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내는 목소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윤리에 관해서 묵직한 울림을 받게 됩니다.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 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  

그리고, 56명의 아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호프집 화재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과 공무원의 부정부패를 상기시켜주기도 합니다.(1999년 10월 실제 있었던 동인천 호프집 화재사건)

 '돈 내고 가라'며 문을 잠가버린 사장으로 56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화재사건으로,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 상수와 경애는 그들 방법으로 목숨을 잃은 친구를 애도하며, 살아남은 자로 삶을 견디면서 나름의 애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경애는 비행, 불량, 노는 애들이라는 말들을 곱씹어보다가 맥주를 마셨다는 이유만으로,은 56명의 아이들이 왜 추모의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하는가 생각했다. 그런 이유가 어떤 존재의 죽음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로 대단한가. 그런 이유가 어떻게 죽음을 덮고 그것이 지니는 슬픔을 하찮게 만들 수 있는가."

김금희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 타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흔히 우리는 상대의 아픔을 다 이해하듯이, 위로의 말을 건네고 때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 일도 간혹 있잖아요.

같은 일을 겪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견디고 이겨내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니, 섣불리 타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나는 더한 일도 겪었으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한 경솔한 행동과 말을 하지 말아야겠어요.

여러모로 생각하게 하고, 경애하는 마음, 공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공유해야 진정한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아마 경애가 그랬을 것처럼 움츠려들었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쓴 듯 마음이 오므라들었다. 기가 죽고 축소되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이란 그렇게 함께 떨어져내리는 것이었다.]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