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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페인트

category 추천도서 2020. 3. 23. 06:00

페인트 / 이희영 장편소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페인트>라는 제목만 봐서는 어떤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뒷면을 보면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온다. 부모 면접을 본다고? 누가? 물음표를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부모를 선택하는 시대
"부모 면접을 시작하겠습니다."​

​소설 <페인트>는 국가가 설립한 NC센터, 즉 국가가 설립한 거대한 양육시설에서 부모를 대신하여 아이를 키워주는 미래 사회를 이야기한다. NC센터는 한국 전역에 퍼져 있으며, 크게 세 곳으로 분류된다. 갓 태어난 아이들과 미취학 아동을 관리히는 퍼스터 센터, 초등학교 입학 후 열두 살까지 교육하는 세컨드 센터, 그리고 열세 살부터 열아홉 살까지 부모 면접을 진행할 수 있는 라스트 센터로 나눠져 있다.

​아기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정부는 결국 '낳기만 하면 국가가 책임지고 키우겠다'라는 새로운 길을 연 것이다. 부모에게서 버려진 아기들은 다 자란 후 입양된다. 아이를 원하거나 입양을 통해 정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각종 혜택과 보장 제도를 받으려는 예비부모들은 면접을 치러야한다.

​열일곱 살 주인공 제누는 4년동안 페인트(부모 면접, 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소설 속 아이들이 쓰는 은어)를 치러왔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원해서 오는 것보다 정부의 혜택을 받으려고 오는 예비부모들에게 번번히 실망을 한다.​

"부모를 만나는 게 싫어?"
"글쎄, 내가 팔려 가는 느낌이야."

부모들이란 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각종 혜택과 보장 제도에만 침을 흘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이곳 NC에서 생활할 수 있는 연령은 열아홉 살까지다. 그 뒤로는 센터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NC 출신과 낳아 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을 구분 지으면서 특권의식을 느끼며, NC출신들을 냉대하고 혐오한다. 주인공 제누는 시간이 별로 없다. 2년 남짓 남은 시간에 과연 제누는 부모를 만날 수 있을지.

소설 <페인트>를 읽으면서 미래에는 어쩌면 이런 일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뉴스에서 우리나라 출산율이 OECD국가 중 0.98로 최초로 합계 출산율 1을 밑도는 국가가 됐다는 기사를 봤다.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결혼을 해도 양육비, 교육비 등의 문제로 아기를 낳지 않으니, 먼 미래에는 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소설이 아닌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부모란?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일까?​

까칠하고 솔직한 주인공 제누와 제누와 한 방을 쓰는 밝고 사랑스러운 아키, 껄렁해보이지만 부모에게 입양되었다가 다시 돌아와 상처가 있는 노아를 통해 아이들이 원하는 부모상이 무엇인지, 지금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인지, 만약 내가 페인트를 받는다면 선택받을 수 있을지,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확실히 깨달은 것은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색이 있듯이, 내 아이도 자기가 원하고 좋아하는 색이 있다.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색을 좋아하라고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는 것, 아이가 원하고 좋아하는 색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밑거름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부모, 진정한 가족에는 사랑이 필수조건이다.

기억에 남는 문구​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조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서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p44

저보고 어떤 부모를 선택하겠냐, 묻는다면 저는 자기감정에 솔직한 부모라고 대답하겠어요.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사람은 싫어요. p77

"프리 포스터들은 마치 육아 서적을 열심히 읽은 후에 자, 이만하면 아기를 낳아도 되겠어. 생각하는 사람 같지 않나요?"
"세상 어떤 부모도 미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는 없잖아요."
"부모와 아이와의 관계, 그건 만들어 가는 거니까요." p91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아이는 절대 실험 대상도 연구 대상도 아닌데,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자신에게 맞추려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실험하잖아요. 여자아이 중에서 프릴 달린 원피스에 반짝이는 에나멜 구두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지 않겠어요? 고작 열 살짜리가 억지로 간 발레 학원에서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 끔찍한 일 아니에요? 덕분에 그 아이는 어름이 되어서도 구두를 신지 못하게 됐죠." p107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p112

어쩌면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이 아닌 부모 꿈의 대리인으로 살아가는지도 몰랐다. 아니, 자신이 대리인이라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p159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p160

작가의 말 중에서 [자신이 바라는 아이로 만들려는 욕심보다 아이와의 시간을 즐기는 마음이 먼저다.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되어가는 것이다. 아이를 가르치려 들지 말고 아이와 함께 놀고 즐기면 된다. 글쓰기가 늘 즐겁지 않듯 근래 들어 아이와의 관계가 삐걱거릴 때가 잦았다. 하지만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으로 변한다.]라는 문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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