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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친애하고, 친애하는

category 추천도서 2020. 4. 25. 06:00

친애하고, 친애하는 / 백수린


30년 가까이 엄마랑 살다가 결혼을 해서 떨어져 살게 되면서 '엄마'라는 단어를 들을때면 왠지 마음이 짠하고 먹먹해진다.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엄마라는 존재가 아픔으로 다가올 때가 점점 늘어간다. 무슨 일이 있을때만 전화하고 무슨 날에만 찾아가지만 늘 괜찮다. 걱정마라. 너희들 아무일 없이 사는게 제일 기쁜일이지. 라며 하시는 우리네 엄마들이다. 엄마와 딸은 나이가 들수록 묘하게 닮아간다. 겉모습 뿐만이 아니라 사소한 습관이나 말투, 생활모습 등, 이건 안 닮았으면 좋겠는데. 하는 부분도 어쩜 그렇게 닮았가는지. 나처럼 안 살았으면, 나보다 더 잘 살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딸은 알게 모르게 엄마가 살아온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엄마가 딸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우리 엄마의 엄마의 엄마...엄마가 된 나, 모든 엄마들의 한결같은, 변하지 않을 마음이리라.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연일 화제가 되고있다. 영화가 나오기 전 책으로 먼저 봤었는데 한국여성의 보편적인 삶을 그리고 있어 많이 공감하며 읽었었다. 변한 듯하면서 여전히 변하지 않는, 여성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절망과 좌절이 다음 세대인 나의 딸에게만은 되물림하지 않았으면 하는 엄마이자 여자의 간절한 소망을 담으면서 이런 소설들이 쓰여지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해본다.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할머니, 엄마, 나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여성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스무둘 살이 되었던 그해 봄, 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혼자 지내시는 할머니를 몇 달간 돌봐드리라는 것이다. 출산직후에 나를 할머니께 맡기고 유학을 떠난 엄마는 지방대 토목공학과 교수이며 가정과 자식보다는 자신의 일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엄마와는 달리 나는 전공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학사경고를 받고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 휴학을 한, 늘 엄마 앞에서는 자신이 없는 실망만 안겨주는 딸이다. 엄마에게 자격지심이 있는 나는 할머니를 돌봐드리라는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탁이 나를 할머니 댁으로 유배 보내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의 할머니는 엄마와 같은 존재다. 나를 낳자말자 유학을 떠난 엄마를 대신해 홀로 남겨진 나를 살뜰히 보살펴주신 분이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내가 발목이 삐면 노른자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반죽을 부은 자리에 붙여주고, 감기에 걸리면 파뿌리와 생강을 달여주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낫지 않으면 병원에 데려간 후 병원에서 지어준 가루약을 먹기 좋게 물에 개어주던 사람.


모녀 관계에 가까운 할머니와 내가 다시 같이 지내게 되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사랑없이 결혼을 했다는 것, 학교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께서 겨우 글자만 읽을 수 있었던 할머니를 무시하고 폭력까지 쓰셨다는 것과 힘들게 낳은 아들을 사고로 잃어버린, 그 모든 아픔을 딸을 통해 이겨내고 싶었던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 항상 서러웠던 할머니는 엄마를 키우는 동안 살림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 그것은 활자가 인쇄된 모든 것 - 책이나 신문, 심지어는 전단지마저도 - 을 신성시할 정도로 배움에 대한 열망이 컸으나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던 할머니에게 고학력의 딸이 자랑이고 자부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할아버지 또한 유학을 가고 싶었으나 포기하고, 교육을 받지 못한 할머니와 결혼하여 지적인 대화를 조금도 주고받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좌절, 공허함에 유일한 자랑거리는 엄마였다.


"우리 딸은 사내 아이의 머리를 지녔어!" 할아버지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했다. 딸아이에게 사내아이의 머리를 가졌다고 하는 것은 할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칭찬이었으므로 겨우 대여섯 살인 엄마는 그럴수록 목소리를 높여 아버지가 건네는 책을 읽었다.


이렇듯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꿈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고 갓난아기인 나를 두고 유학을 간 엄마의 힘겹고 비정한 삶도 어느덧 이해하게 되는 나다.

하지만, 모든 면에서 엄마보다 부족한 나는 엄마 앞에서 작아지고 엄마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 관계는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에서도 보여진다. 서로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벌어지는 거리감은 서로에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나는 강과의 사이에서 임신을 하게 되는데...

이렇듯 기본적으로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3대에 걸친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그렇게만 읽히길 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 짧은 소설이 여성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삶과 죽음, 상처와 용서, 궁극적으로 다정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끝내 살게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으면 좋겠다. (작가의 말)


사랑이 없으면 미움도 원망도 상처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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