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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역사의 쓸모

category 추천도서 2020. 5. 1. 06:00

역사의 쓸모 / 최태성 지음

인터넷 역사 강의로 유명한 큰별샘 최태성, 아들 역사 공부 좀 시키려고 덩달아 같이 들었었는데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강의를 해서, 그리고 아이들의 생각이나 고민들을 잘 알고 계신듯(전직 교사였다는) 역사 이야기와 접목해서 어떻게 해야할지를 알려주는 부분에서 정말 감동이었고 고마웠다. <역사의 쓸모>를 읽으면서 강의를 듣는 듯한 착각을, 초등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누구나 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외우기에만 급급했던 역사를 우리의 삶과 연결하여 역사 속 인물과 사건들을 통해 오늘의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알려주고,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에 디딤돌이 되어주는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아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

내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역사. 다른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주는 역사. 그래서 궁극적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하게 하는 역사.


최태성의 <역사의 쓸모>는 몇년도에 무슨일이 일어났고, 몇년도에 누가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왠지 기록하고 달달 외워야할 것 같은, 시험문제에 꼭 나올 것 같아 빨간 줄 긋고 별표해서 몇번씩 읽고 외우고 했던 교과서 같은 역사책이 아니어서 일단 만족이다. 역사 스토리텔링과 자기계발서를 묘하게 섞어놓은 것 같아 재미도 있고 공감도 가고 교훈도 얻을 수 있다.

제일 기억에 남는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먼저 '시치미 떼지말라'는 말의 유래가 귀한 사냥매를 도둑맞지 않기위해 이름표를 달아놓았는데 그 이름표를 시치미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시치미를 떼고 자신의 시치미를 달고는 안 훔친척 하는 것에서 이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런 속담이나 지명 유래에 얽힌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다. 그리고, '새날을 꿈꾸게 만드는 실체 있는 희망' 부분에서 농민군이 우리 관군과 일본을 상대로 우금치에서 싸우다 대패한 '우금치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정말 그분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오늘 하루도 평화롭게 무사히 맞이하고 보내고 있음에 감사하게 된다. 뻔히 질 것을 알면서, 자신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맞서 싸운 그 농민군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양반 평민 할 것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겠다는 희망 하나만 생각하고 두려움 속에서도 싸웠을 것이다.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것 같다. 다시한번 고개숙여 그분들의 넋을 기려본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두려움은 희망 없이 있을 수 없고 희망은 두려움 없이 있을 수 없다."


'역사의 구경꾼으로 남지 않기 위하여' 에서 자기 사람을 만들기 위해 왕실도서관인 규장각을 세운 정조와 다방면으로 뛰어난 정약용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두 사람 이야기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면 정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조에 관한 드라마는 이미 방영된 적 있지만 정조와 정약용 두 사람이 함께한 공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영상으로 만들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힘들게 왕이 된 정조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정약용, 하지만 정약용은 매 고비와 고난에 자신을 놓는 대신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읽고 쓰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했기에 역사는 그를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로 기록하고 후손들에게 존경받는 학자로 길이길이 남게된다.

"진실로 너희들에게 바라노니, 항상 심기를 화평하게 가져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다름없이 하라. 하늘의 이치는 돌고 도는 것이라서, 한번 쓰러졌다 하여 결코 일어나지 못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생을 바쳐 백성을 구제하려 '대동법'을 만든 '김육'에서는 한 번의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또한 어우동에서는 어우동이 기생이 아니라 양반집 규수였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어우동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거라 흥미롭고 안타까웠다. 고려시대에는 남녀가 평등했다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확고해진 남존여비사상, 가부장제, 재가금지법, 내훈까지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으로 1896년에 태어난 나혜석이라는 신여성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의 미투운동의 효시라고도 볼 수 있는 기념비적인 인물 나혜석. 그 시대에도 용기있는 여성이 있었구나. 아무나 못할 어려운 일을 누군가가 용기와 목숨을 걸고 하기에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세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용기에 박수를...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중략)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의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리라.
그러나 소녀들이여 깨어나 내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라.
[이혼고백서] 중에서


'길을 잃고 방황할 때마다 역사속에서 답을 찾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속에 업적을 남긴 그분들의 삶을 보면 한가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길을 걸어갔다는 것이다. 인생은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라는 아주 사소한 선택부터, 안정적인 지금의 직장에 계속 다닐 것인가 아니면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해 볼 것인가.라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선택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렇게 힘든 선택의 순간에 다행히 우리는 수천년의 시간, 수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는 역사를 아니깐 그 과거 사람들의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예측해볼 수 있다. 나의 삶을 좀 더 의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과거에서 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쓸모 아니겠는가. 저자는 살면서 힘들고 흔들리는 순간에 '한 번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이회영 선생의 말을 떠올린다고 한다. 저마다 자신에게 와닿는 울림을 주는 역사속의 인물이나 말들이 있을 것이다. 힘들거나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 때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말을 떠올리면서 다시한번 힘을 내보자. 그래서 명언이나 좋은 글귀는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역사는 우리의 삶에 희망을 주고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서라고 한다. 역사 속의 인물들은 우리의 멘토가 되고 힘들때마다 소환하여 도움을 청하기를 바란다.

수백 년 전 이야기로 오늘의 고민을 해결하는 세상에서 가장 실용적인 역사 사용법! <역사의 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