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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신경숙의 종소리

category 추천도서 2018. 6. 1. 13:35
신경숙의 '종소리'

당신은 돌아온 새 같다.
이젠 어디에나 깃들일 수 있는 새 같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보면 쉼표, 반복적 어구, 말줄임표(.....) 등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심미주의적 문체라고, 이러한 문체는 시시각각 변하는 여성의 마음과 정신을 섬세하게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라고 읽은 기억이 난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었는데, 자전소설인 외딴방이라든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기차는 7시에 떠나네, 깊은 슬픔, 단기간에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올랐던 엄마를 부탁해까지, 읽고나면 가슴 깊숙한 곳에 떨림을 남기고 묵직한 무게를 남기는 가볍지 않은 한번쯤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들이라 신경숙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안 좋은 일도 있었지만 오늘은 접어두고 싶다.

얼마전에 기존의 신경숙 작가의 작품과는 다른 가볍게 읽혀지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스물여섯 개의 짧막한 이야기가 담겨져 있는데
혼자 사는 과부 집에 시주 온 스님과 과부 사이에서 '안~주면 가나봐라~, 그~칸다고 주나봐라~에서 웃음보가 빵 터졌었다. 일상 생활에서 소소하게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웃음을 준 책이었다.

'종소리'에는 6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그 중에 가장 나에게 울림이 있었던 '종소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낯선 새 한마리가 세면장 창틀에 집을 짓고 있다는 걸 발견한 건 당신이었다.'로 시작한다.

17년 동안 다니던 회사가 경제적 위기에 휘청거리는 가운데 다른 회사에 스카웃이 되어 이직한 남편과, 세번의 유산을 겪은 아내의 이야기다. 그들은 서로 자신들이 겪은 일을 말하지 않는다.

남편은 회사를 옮기고서도 아침마다 지난 17년 동안 다녔던 회사로 출근해 차를 마시고, 지금의 회사로 갔다가, 점심 때가 되면 다시 옛 회사로 가 옛 동료들과 점심을 먹는다.
17년 동안 일해온 회사가 하루아침에 도산을 하고 채권단 관리로 넘어간 상태에서 옛 동료들은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당신 혼자 스카우트 되어 회사를 옮겨간 것에 대해 가책을 느끼고 있는 남편은 정신과 상담까지 받고 있다.

'날아온 새는 문을 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달아나는 와중에는 어느새 집을 다 짓고 세 개의 알을 낳았다'

"내 곁에 꼭 당신이 있어여만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당신 곁에 꼭 내가 있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도 아이를 데리고 목욕탕에도 다니고 일요일이면 피크닉도 다녀라. 그렇게 말해주고 떠났으면 싶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새 가정을 이루어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한 번만 보여주라, 말하고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언젠가 내 앞의 거친 풀을 당신이 베어주었으면, 하다니."

남편은 정신과 상담을 하면서 "나는 한번도 내 나이를 살아본 적이 없습니다. 라고. 스무 살 때에도 마흔 살처럼 서흔 살에도 마흔 살처럼 마흔 살이 되었을 때는 쉰 살처럼 살았다는 당신."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굴레~ 우리네 아버지들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들은 내려올 줄을 모른다.
그 과중한 의무와 책임을 떠맡기만 했을 뿐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 남편에게 어머니가 되어 위로를 해 주라한다.

'깨알 같은 까만 점이 박힌 새알 대신 따뜻한 새끼를 품게 된 어미는 몹시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남편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크론키드카나다'란 희귀병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병으로 몸무게는 급격히 줄어 뼈만 앙상하고 손톱, 발톱, 머리카락이 빠진다. 특별한 치료법도 수술도 안 되는 음식만 먹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다.

'어미새는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새끼들 입 속에 넣어준다.'

텔레비전 화면을 깊이 응시하고 있는 남편!
세계 여러 지역의 독특한 풍물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였다. 망자의 육신을 새에게 바치는 티베트의 천장 풍습~ 망자의 사지를 잘라내고 잘게 살점을 저며, 소스 같은 걸 바른 후 독수리에게 던져준다. 독수리에게 망자의 살점을 뜯길 때 유족들은 웃고 있다.
"하늘에 시신을 묻는거야. 새들이 망자의 살점을 한 점 남김없이 잘 뜯어먹어야 영혼이 편안하다는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에 베푼 다음 떠나는 거지."

나날이 눈도 코도 입도 퀭해져 가는 남편~ 의사는 결정적인 식욕촉진이라는 부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라는 약을 사용해도 좋을지 물어오는데 마다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야위어가던 남편이 힘겹게나마 밥 끓인 물을 먹기 시작하여 열흘 만에 오백 그램이 늘어났지만, 이틀만 못 먹으면 육백 그램이 줄어든다.
오백 그램의 부활과 육백 그램의 죽음 사이를 오가며 남편은 새처럼 누워 있거나 앉아 있다.

'새끼들의 솜털이 돋고 깃털도 돋고 죽지래로 칼깃도 자라 드디어 새들은 날아갔다.'

당신의 뼈를 하나하나 짚어본다.
그래, 괜찮다.......이젠 괜찮다.

'대화'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게 해 준 소설이다. 대화는 타인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의사표현이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 감정을 나누면서 더욱 친밀해지고 신뢰를 가지면서 유대관계가 단단해진다. 이 부부에게는 소통의 길이 단절되면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지고 그 선을 넘어 서로에게 다가가고 진정으로 이해하고 품어주기까지가 너무 힘이 든다.

더불어 남편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책임감, 무게를 져버리지 못해 인간적 도의를 저버리고 이직한 회사로 출근하는 날 새 한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튼다.
새는 하늘을 마음껏 나는 '자유'를 상징하는 매개체로 남편이 짊어지고 있는 짐을 다 버리고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욕망을 새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결국 새처럼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남편은 병이 든다. 병 때문에 휴직을 하고, 육체는 점점 야위어가고 죽음의 문턱에 아슬아슬하게 있지만 힘든 삶의 무게에서 벗어난 남편은 새처럼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으로 즐거워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도 이제는 남편의 고통, 아픔, 희망을 보듬을 수 있는 어머니 같은 존재로 남편을 이해하게 된다.

「삶이 주는 무게와 고통 속에서 '진정한 소통'은 탈출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