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연필로 쓰기
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히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3년 반여간 원고지에 육필로 꾹꾹 눌러쓴 산문들을 모아 낸 산문집 알림에 쓰여진 문장이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지만 이 글은 결코 스쳐지나가고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저마다의 묵직한 무게와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라 가벼이 할 수가 없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