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로 쓰기 / 김훈 산문
3년 반여간 원고지에 육필로 꾹꾹 눌러쓴 산문들을 모아 낸 <연필로 쓰기> 산문집 알림에 쓰여진 문장이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지만 이 글은 결코 스쳐지나가고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저마다의 묵직한 무게와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라 가벼이 할 수가 없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칼로 잘 깍여진 연필로 한 자 한 자 쓸때마다 사각사각 나는 소리와 쓴 만큼 나오는 석탄가루를 후후 불어가면서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가며 내 마음을 전하는 매개물로 연필이 제일이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신다는 김훈 작가의 글은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묵직한 울림과 의미를 담고 있어 읽기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이번 산문집도 어김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 묵직함 속에 간혹 한줄기 웃음(저자가 호수공원의 산신령이 된 사연과 여성 노인들의 결론도 한도 없는 수다에서 공감과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과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오이지)이야기에서는 한박자 쉬어갈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연필로 쓰기> 산문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1부 연필은 나의 삽이다에서 두번째 이야기로 나온 '밥과 똥' 이야기이다. 똥으로 이렇게 인상깊고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역시 김훈 작가님이니 가능한 일이지싶다.
개똥에서 시작한 똥 이야기는 다 같은 인간이 싼 똥이지만 가치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똥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 초식동물인 소똥이나 말똥에서는 사람똥이나 개똥처럼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것, 사람 욕하고 악다구니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술 마신 다음날 나오는 똥은 슬픈 똥이라는 것까지.
작가의 똥 이야기는 오늘도 끓는 뱃속을 움켜잡으며 변기에 앉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생애가 다 거덜나는것이 확실해서 울분과 짜증, 미움과 피로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별수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술 취한 자의 그 무책임하고 가엾은 정서를 마구 찌껄여대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지껄이고 낄낄거리고 없는 사람 욕하고 악다구니하고 지지고 볶다가 돌아오는 새벽들은 허무하고 참혹했다. (나는 이제 이런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머리는 깨지고 속은 뒤집히고 몸속은 쓰레기로 가득찬다. 이런 날의 자기혐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완성된다.
뱃속이 끓어서, 똥은 다급한 신호를 보내오고 항문은 통제력을 잃고 저절로 열린다. 이런 똥은 힘을 주어서 짜내지 않아도 새어나온다.
나는 요즘에는 이런 똥을 거의 누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똥은 다소 안정되어갔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져서 나는 멍청해졌다. 이 멍청함을 노혼이라고 하는데, 똥도 노혼이 왔는지 날뛰지 않는다.
똥이 편안해졌다는 것은 나이 먹은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 동해에서 해가 뜨는 매일 아침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청장년층들이 변기에 앉아서 내 젊은 날의 아침처럼 슬픔과 분노의 똥을 누고 있다. 밥에서 똥에 이르는 길은 어둡고 험하다.
그리고 세월호와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했던 한 배달라이더의 이야기에서는 분노와 아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빛의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채,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세 축구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냄새, 학교 가는 아이를 먹이려고 아침밥상을 준비할 때 찌개가 끓으면서 달달거리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인가.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비로소 안다.
라이더유니온의 오픈카톡방에 한 라이더가 글을 올렸다.
청년들이여,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내 머리 위에 군림한다고 세동대왕님, 이순심 장군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어조는 거칠지만, 그가 말하려 하는 바는 거칠지 않다. 도시의 네거리 신호대기선에서, 오토바이들은 홀로 서 있다.
사회, 정치, 경제, 외교, 역사 등 두루두루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작가의 글들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고 깨우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과 또한 지금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채찍질하게도 된다. 물론 나의 무지로 인해 백프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벌써 칠십이 넘은 작가님의 글은 그만큼의 노련하고 많은 경험과 삶을 사신 인생에서 나오는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웃게도 하는 인생책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품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내가 있다. 지금 숨 쉬고 살아있는 자체만으로도 다행이고 복된 삶이라 감사하며, 나이듦에 기뻐하고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길 빌고 나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프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누항의 일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나는 70살까지 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70년 세월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증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히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3년 반여간 원고지에 육필로 꾹꾹 눌러쓴 산문들을 모아 낸 <연필로 쓰기> 산문집 알림에 쓰여진 문장이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을 말하려고 한다지만 이 글은 결코 스쳐지나가고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아니다. 저마다의 묵직한 무게와 깊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들이라 가벼이 할 수가 없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
칼로 잘 깍여진 연필로 한 자 한 자 쓸때마다 사각사각 나는 소리와 쓴 만큼 나오는 석탄가루를 후후 불어가면서 틀리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꾹꾹 눌러가며 내 마음을 전하는 매개물로 연필이 제일이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원고를 쓰신다는 김훈 작가의 글은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묵직한 울림과 의미를 담고 있어 읽기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이번 산문집도 어김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묵직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어 쉽게 읽혀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그 묵직함 속에 간혹 한줄기 웃음(저자가 호수공원의 산신령이 된 사연과 여성 노인들의 결론도 한도 없는 수다에서 공감과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과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오이지)이야기에서는 한박자 쉬어갈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연필로 쓰기> 산문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1부 연필은 나의 삽이다에서 두번째 이야기로 나온 '밥과 똥' 이야기이다. 똥으로 이렇게 인상깊고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역시 김훈 작가님이니 가능한 일이지싶다.
개똥에서 시작한 똥 이야기는 다 같은 인간이 싼 똥이지만 가치가 다르다는 것, 그래서 똥에도 계급이 있다는 것, 초식동물인 소똥이나 말똥에서는 사람똥이나 개똥처럼 악취가 나지 않는다는 것, 사람 욕하고 악다구니하고 지지고 볶으면서 술 마신 다음날 나오는 똥은 슬픈 똥이라는 것까지.
작가의 똥 이야기는 오늘도 끓는 뱃속을 움켜잡으며 변기에 앉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울린다.
생애가 다 거덜나는것이 확실해서 울분과 짜증, 미움과 피로가 목구멍까지 차오른 날에는 술을 마시면 안 되는데, 별수없이 술을 마시게 된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술 취한 자의 그 무책임하고 가엾은 정서를 마구 찌껄여대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지껄이고 낄낄거리고 없는 사람 욕하고 악다구니하고 지지고 볶다가 돌아오는 새벽들은 허무하고 참혹했다. (나는 이제 이런 술을 마시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머리는 깨지고 속은 뒤집히고 몸속은 쓰레기로 가득찬다. 이런 날의 자기혐오는 화장실 변기에 앉았을 때 완성된다.
뱃속이 끓어서, 똥은 다급한 신호를 보내오고 항문은 통제력을 잃고 저절로 열린다. 이런 똥은 힘을 주어서 짜내지 않아도 새어나온다.
나는 요즘에는 이런 똥을 거의 누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똥은 다소 안정되어갔다. 자아와 세계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져서 나는 멍청해졌다. 이 멍청함을 노혼이라고 하는데, 똥도 노혼이 왔는지 날뛰지 않는다.
똥이 편안해졌다는 것은 나이 먹은 나의 이야기일 뿐이고, 지금 동해에서 해가 뜨는 매일 아침마다 이 나라의 수많은 청장년층들이 변기에 앉아서 내 젊은 날의 아침처럼 슬픔과 분노의 똥을 누고 있다. 밥에서 똥에 이르는 길은 어둡고 험하다.
그리고 세월호와 폭염수당 100원을 요구했던 한 배달라이더의 이야기에서는 분노와 아픔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죽은 아이의 목소리, 웃음소리, 노랫소리, 빛의 폭포처럼 흘러내리던 딸아이의 검은 머리채, 처음으로 립스틱 바르고 깔깔 웃던 입술, 아들이 동네에세 축구하고 돌아온 저녁의 땀냄새, 학교 가는 아이를 먹이려고 아침밥상을 준비할 때 찌개가 끓으면서 달달거리는 소리... 이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인가. 이 사소한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비로소 안다.
라이더유니온의 오픈카톡방에 한 라이더가 글을 올렸다.
청년들이여,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내 머리 위에 군림한다고 세동대왕님, 이순심 장군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어조는 거칠지만, 그가 말하려 하는 바는 거칠지 않다. 도시의 네거리 신호대기선에서, 오토바이들은 홀로 서 있다.
사회, 정치, 경제, 외교, 역사 등 두루두루 종횡무진 뻗어나가는 작가의 글들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하고 깨우치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기쁨과 또한 지금의 내 자신을 반성하고 채찍질하게도 된다. 물론 나의 무지로 인해 백프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벌써 칠십이 넘은 작가님의 글은 그만큼의 노련하고 많은 경험과 삶을 사신 인생에서 나오는 글로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웃게도 하는 인생책이다.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한가닥 희망을 품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내가 있다. 지금 숨 쉬고 살아있는 자체만으로도 다행이고 복된 삶이라 감사하며, 나이듦에 기뻐하고 그 나름의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찾으며 살아가길 빌고 나 또한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가 아프고 젊은 엄마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누항의 일상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나는 70살까지 산 것이다. 이것을 알았으니 70년 세월은 헛되지 않았구나 싶었다.
나는 말하기보다는 듣는 자가 되고, 읽는 자가 아니라 들여다보는 자가 되려 한다. 나는 읽은 책을 끌어다대며 증언부언하는 자들을 멀리하려 한다. 나는 글자보다는 사람과 사물을 들여다보고, 가까운 것들을 가까이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보던 것이 겨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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