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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세 가지 소원

category 추천도서 2018. 12. 31. 11:55

세 가지 소원 / 박완서 소설집

따뜻하고 정감있는 글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치유해 준 박완서의 짧은 이야기들!

작가가 아끼는 글들을 한 권에 모아 만든 <세 가지 소원>은 70년대에 초에 쓴 '다이아몬드' 부터 최근에 쓴 '큰 네모와 작은 네모', '세 가지 소원' 까지 10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어요.

할머니가 손녀, 손자들에게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게 우리의 시린 마음을 온기로 가득 채워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입니다.

유년 시절의 추억과 정서를 담아내어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반면 사회 현실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글에서는 반성과 울림을 독자들에게 안겨줍니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청소년, 어린이들까지 읽었으면 하는 책입니다.

 "이 이야기의 숨은 의미는 오늘날 더 유효하다."

[여기 실린 글들은 70년대 초부터 콩트나 동화를 청탁받았을 때 쓴 짧은 이야기들은 모은 것입니다.
비록 짧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 담아내고자 했던 작가의 숨은 뜻은 그 글이 나왔던 당시보다 오늘날 더 유효할 것 같은 안타까움과 자부심 때문이었습니다. -책머리에-]

작가가 많이 아끼는 글들을 모은만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가 70년대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의미가 깊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공감과 재미, 깨달음과 울림을 준 박완서의 <세 가지 소원> 중에서 기억에 많이 남는 몇 몇 이야기를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해요.

먼저 웃음과 깨달음을 준 최근작인 <큰 네모와 작은 네모>는 슬기의 그림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상상력이 풍부한 슬기의 엉뚱한 그림은 선생님을 미궁 속으로 빠뜨리곤 하는데요.

한번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얼굴을 그리라고 했더니 네모난 도화지 맨 밑 한가운데 조그만 아빠의 발바닥을 그린 거에요. 휴일이면 이불을 푹 덮고 잠만 자는 그런 아빠가 될까봐 미리 경고하는 의미로 그렸다고 하네요.ㅎㅎ 

이번에는 스케치북 한 장을 온통 짙은 하늘색으로 칠하고 그 안에 회색 네모들만 떠 있는 그림을 그려 물었더니 바다에서 헤엄치는 갈치라고 합니다.
갈치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헤엄치는지 보지 못한 슬기의 그림인거죠.

슬기의 그림를 통해 우리는 살아있는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책상에 앉아 책으로만 배우고, 인터넷 검색으로 모든 것을 알려고 하는 현실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많은 것을 직접 체험하고 보고 느끼는 산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바다에선 엄마가 갈치를 씻을 때 나는 냄새가 났어요. 그렇지만 갈치가 어떻게 헤엄치는지는 못 봤어요. 엄마가 위험하다고 먼 바다까지 못 나가게 했거든요."

두 번째 이야기는 추억과 격한 공감을 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 아빠, 할머니의 이야기인데요.

태어날 아기를 위하여 엄마는 무엇보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가족 뿐만 아니라 이웃을 따뜻이 돌아보아 넉넉한 마음은 더욱 커지고, 그동안 아껴 모아둔 돈으로 아기를 위해 가장 좋은 것으로 아기의 물건을 사 두는 엄마는 비록 주머니는 헐렁해졌지만 마음만은 날로 가득해집니다.

엄마 못지 않게 아빠도 아기가 살면서 위험한 일이 없도록 줄 끊어진 그네줄을 고치고, 연탄 가스가 새어 들어오지 않도록 방구들을 고치고, 아기 침대에 달린 바퀴를 고치고, 해로운 그림책은 없나 살피면서 아빠는 결국 아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믿음직한 아빠가 되는 준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아기가 꿈을 꾸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람과 사물의 비밀을 열 수 있는 많은 이야기를 준비합니다.

새 생명을 맞을 준비를 하는 엄마, 아빠, 할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애들을 가졌을 때가 생각났어요.

모든 생활과 생각이 뱃 속에 있는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설레임과 함께 걱정, 두려움도 컸던 그 시절, 정말 초보 엄마, 아빠의 좌충우돌 육아 때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평소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일이었는데 내 아기와 관련된 일이라 생각하면 다르게 보이죠.
이 이야기 속 아빠를 보면 놀이터의 끊어진 그네줄을 그냥 못 지나치고, 무심히 밟고 지나 갔던 맨홀이 갑자기 위험해 보이고, 한 두명의 뺑소니 차, 유괴범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의심되는 상황까지 오게 됩니다.

정말 한 생명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마음과 모습을 보니 절로 흐뭇하고 미소가 지어지는, 새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였어요.

[이야기 선물을 마련해 놓고 아기를 기다리는 할머니의 마음은 마냥 찬란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아빠는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믿고 살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비밀은 비밀답게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사물 속에 감춰져 있습니다. 어떤 비밀은 겹겹의 두꺼운 껍질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어떤 비밀은 마치 허드레 물건처럼 밖에 나와 있기도 합니다. 사물의 비밀과 만나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참맛이라고 할머니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아빠의 선생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려운 시절 학생들을 위해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던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70년대 그 때 우리나라는 많이 어려웠죠. 점심 도시락을 싸 오지 못 하는 학생들이 많았을 거에요. 그런 학생들을 위하여, 그 애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점심을 먹이고자 큰 양푼이와 참기름을 가지고 오셔서 아이들 도시락을 모두 걷어다가 반찬이랑 김치랑 한데 넣고 비벼서 다 같이 먹은 거죠.

주인공은 선생님이 비빔밥을 좋아하셔서 매일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으리라 생각하고 오랜만에 뵌 선생님께 비빔밥을 대접하죠.

사실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배고픔을 달래주고자 하신 일인데...정말 가슴 뭉클한 선생님의 사랑에 가슴이 찡해지네요.

"비빔밥 먹는 날은 내 도시락을 서너 사람은 먹게 넉넉히 싸고 소고기도 좀 볶아 가지고 가서 슬쩍 같이 넣고 비비면 우리 반이 다 같이 배부르게 먹을 수가 있었지."

마지막으로 <찌랍디다> 이야기는 꼬마 신랑에게 시집 간 색시가 첫날 밤 바지에 똥을 싼 신랑에게 같이 온 시삼촌의 바지를 몰래 가져와 입히고, 신랑이 똥 싼 바지는 궤짝에 넣어 보자기에 싸 시댁에 보내 망신을 준 통쾌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 신랑을 미끼로 어른 색시를 데려다 부려먹으려는 그릇된 풍습에 이 지혜로운 색시가 일침을 가한거죠.

이 지혜롭고 똑똑한 여자의 소리없는 반항이 있었기에 오늘날 이런 그릇된 풍습이 없어진 것이겠죠.

"죽어도 시집 울타리 밑에서 죽어야 한다느니, 시집간 날부터 장님 삼 년, 벙어리 삼 년, 귀머거리 삼 년을 살고 난 후에야 비로소 시집 식구가 될 수 있다느니 하는 소리는 어려서부터 골백번도 더 들은 소린데도 또다시 복습을 강요당합니다."

비단 보자기를 끄르자 옻칠도 아름다운 궤짝이 나왔습니다.
" 이 속에 무엇을 넣어 보내셨는지 아느냐?"
누군가가 계집종에게 물었습니다.
"찌랍디다."
계집종은 간단히 아뢰었습니다. 아랫목에서 듣고만 있던 노마님이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띠고 말했습니다.
"찔 것 없다. 사돈댁에서 보내신 귀한 건데 좀 굳었으면 어떻겠느냐?"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동화같은 책을 읽게 되어 너무 좋았어요.

쉽게 읽혀지면서도 가볍지 않은, 삶의 가치와 진정한 삶의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의미있는 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