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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쇼코의 미소

category 추천도서 2018. 12. 19. 08:42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소설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

처음 표제작을 읽으면서 울고, 다음이야기, 다음이야기 읽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면서,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다가 마지막 '비밀'을 읽을 때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눈물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본 것도 아닌데,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눈가가 따끔거리고, 코를 훌쩍이면서 운 적은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슬픈 드라마를 본 듯한, 계속 머릿속에 장면이 떠올라서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먹먹하고 가슴이 아렸어요.

최근에는 에세이나 자기 개발서 위주의 책들을 읽다가 간만에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고 여운을 많이 남긴 책이어서 너무 좋았어요.

인간의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어서 아직도 내가 감정이 메마르지 않았구나. 타인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구나. 하면서 작은 안도와 나에게 위로가 된 책이었어요.

최은영의 두번째 소설인 <내게 무해한 사람>을 먼저 읽었었는데 그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서(사실 어떤 부분에서는 좀 난해해서 갸우뚱하기도 했던 기억이) 기대를 하면서 이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를 읽었는데, 기대 이상이라 뿌듯하기까지 하네요.

개인적으로는 <쇼코의 미소>가 더 좋았습니다.

이 소설은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 외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어요.

차례
쇼코의 미소 _ 007
씬짜오, 씬짜오 _ 065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_ 095
한지와 영주 _ 123
먼 곳에서 온 노래 _ 183
미카엘라 _ 213
비밀 _ 243

대략적 줄거리
<쇼코의 미소>
일본 소도시의 작은 여학교와 한국 소도시의 여학교가 자매 결연을 맺으면서 만나게 되는 두 여학생 '쇼코'와 '소유'

쇼코는 자매학교인 한국 소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견학을 오게 되면서 할아버지와 엄마가 함께 사는 소유의 집에 일주일 머물게 됩니다. 쇼코로 인해 조용하던 집에 활력이 생기고 일본말을 하실 줄 아는 할아버지와 쇼코는 급격히 가까워지면서 친구가 되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쇼코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지만 편지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게 되는데, 친구가 된 할아버지에게도 편지를 보내는 쇼코, 할아버지한테는 밝은 일상을, 소유에게는 어두운 생각들을 편지로 보내는데 소유는 쇼코의 모순된 말들에 혼란을 느낍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쇼코의 편지가 더 이상 오지않고, 소유의 할아버지는 투병생활을 하지만, 소유는 할아버지가 아프신 것도 모른 채 영화 감독이 되기위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롯히 자신에게만 예민해 있는 상태로 살아갑니다.
드디어 할아버지의 병을 알게 되고, 끝내 할아버지는 돌아기시죠. 다시 쇼코와 연락이 닿게 되는 소유는 쇼코가 할아버지의 투병을 알고있었다는 데 질투를 느끼지만, 할아버지와 쇼코가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쇼코에 대해서 자신이 가졌던 편견과 이해못했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쇼코에게 한발짝 다가서게 됩니다.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사람, 쇼코와 소유가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어요.

<쇼코의 미소>를 읽으면서 내가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진정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무관심과 무배려로 인해 서로 상처와 외로움에 아파하고 병들어 가고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쇼코의 미소>였어요.

그제야 할아버지의 마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몸이 말라가고, 피부가 누렇게 변해가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건 그냥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인 줄로만 알았다. 단지 그 노화가 조금 빠르게 진행된다고만 생각했다. 나 자신에게는 그리도 예민했으면서 할아버지의 상황에는 왜 그토록 무뎠었는지. P45

<찐짜오, 찐짜오>
독일 생활에서 유일하게 가깝게 지내던 베트남 이민자 투이 가족, 주말마다 시간을 함께 보내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엄마, 아빠도 그 시간만큼은 여느 부부처럼 다정해보여서 화자는 그 시간이 기다려지고 좋아하죠.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 통치 식민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역사에 관해 아는 체를 하면 엄마, 아빠가 뿌듯해하실 생각을 하면서 화자는 대한민국은 남을 침략한 적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응웬 아줌마는 베트남전에서 한국인의 학살로 가족을 잃은 과거 얘기를 하죠. 엄마는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아빠에게도 사과하기를 권하지만, 아빠는 자신도 베트남전에서 형을 잃었다며 왜 우리가 사과를 해야하나며 화를 내고 나가버립니다.
이 후 두 가족의 관계는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멀어져가고, 얼마 후 화자의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는데...

하나의 일(베트남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저마다 처한 입장으로 인해 다르게 보고, 느끼고,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응웬 아줌마의 경우는 베트남전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었으니, 한국인이 남을 침략한 적 없다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망도 하겠죠. 아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형도 베트남전에서 잃었으니 응웬 아줌마의 슬픔을 같이 슬퍼해 줄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며, 엄마는 베트남 전쟁과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으니, 응웬 아줌마의 슬픔을 함께할 수 있으며, 미안하다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짠짜오, 찐짜오>에서 응웬 아줌마와 엄마와의 관계를 보면 가족마저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를 응웬 아줌마는 단점도 장점으로 봐 주고, 엄마에게 곁을 내 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니, 엄마가 응웬 가족과 멀어졌을 때의 그 상실감과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요?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P89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할머니의 옷 수선 일을 도와주러 온 먼 친척인 순애이모와 나.
순애이모와 엄마인 해옥은 둘도 없는 사이로 지내다가 순애이모의 남편이 인혁당 사건으로 감옥에 가고, 엄마인 해옥도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이룬 뒤부터 둘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고...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 것이 나았다. P105

<한지와 영주>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 자원봉사자로 오게 된 케냐 출신의 청년 '한지'와 만나게 되는 '영주'는 서로의 속마음을 얘기할 정도로 친하게 지내지만 갑자기 등을 돌려버리는 한지.
무슨 이유로 한지는 영주에게서 멀어진걸까?

우리는 예의바르게 서로의 눈을 가렸다  결국 마지막에 와서야 내가 먼저 그의 눈에서 내 손을 뗐고, 우리는 깨끗하게 갈라섰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지막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기에 그 이별은 우리 사이에 어떤 사랑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었다. P130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P164

<먼 곳에서 온 노래>
학번이 벼슬입니까? 해마다 나타나서 제일 어리고 만만한 여자애 붙잡고서 주정하는 인간도 제 선배입니까? 신경석 씨, 민주주의 사랑한다고 하셨어요?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가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P198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 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곳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P201

<미카엘라>
엄마와 딸의 입장에서 각각 이야기한 <미카엘라>
엄마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오게 됩니다. 하룻밤을 묵어야하는데 딸이 불편해할까 친구네 집에 가서 자면 된다는 엄마는 하룻밤 숙박료에 놀라 찜질방을 찾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할머니로 인해 다음날 세월호 유가족 집회가 있는 광화문 광장에 오게 되는데...

여자는 노인들을 볼 때마다 그런 존경심을 느꼈다. 오래 살아가는 일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오래도록 남겨지는 일이니까. 그런 일들을 겪고도 다시 일어나 밥을 먹고 홀로 길을 걸어나가야 하는 일이니까. P238

<비밀>
할머니 '말자'와 손녀 '지민'의 애틋한 사랑, 그리움이 묻어나는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지민이 그곳으로 가고 나서, 말자는 지민의 목소리를 환청으로 여러 번 들었었다. 다른 말도 아니고 꼭 할머니, 라고 부르는 소리였다. 세상에서 말자가 가장 듣고 싶은 목소리와 말이었다. P264

할민 사람 좋아하는게 무서웠다, 지민아. 사람 좋아하믄 맘이 아프구 힘들잖여. 할미는 겁이 많아선가 언제부턴가 그런 게 무섭드라. 그래두 늙음 안 그럴 줄 알았어여. 근데 아니잖여. 눈두 늙구 귀도 늙구 손발이 나무 껍데기만치 딱딱해져두 맘은 안 그렇드라. P265

일곱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 마를 새가 없었네요.
한 편 한 편 가슴을 울리고, 먹먹하게 만든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였습니다.

타인과 나와의 관계, 어느 한쪽에서든 아니면 양쪽에서 이어져오던 관계가 끊어지면, 우리는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상처가 크든 작든 한동안, 때론 평생동안 가슴에 묻고 살아가죠.

스치는 인연이든 계속되는 인연이든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을 맺고,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고, 존재합니다.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