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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category 추천도서 2019. 1. 27. 11:55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 허혁

작지만 단단한 삶에 대한 얘기

허혁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에세이는 패터슨 시에 사는 시내버스 기사 '패터슨'을 주인공으로 한 독립영화 <패터슨>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주인공이 저자와 같은 버스기사라는 것과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특별하게 여겨졌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여행자가 패터슨에게 시인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고 답하는 대사에서 환한 웃음이 났다는 저자는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한 적이 있다며 미국에도 나와 같은 버스기사가 있어 기뻤다고 하네요.

나는 격일로 하루 열여덟 시간씩 시내버스를 몬다. 버스기사보다 더 버스기사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누가 봐도 버스기사라 나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대꾸하기 싫은데 묻지 않아서 좋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 좋다. 그 사람 머릿속에 있는 딱 그 버스기사로 맞춰 산다.

시내버스 5년 차인 저자는 18년 동안 가구점을 하다가 접고, 귀농을 계획했지만 아내의 반대와 장애가 있는 딸 때문에 버스기사가 되었다고 해요.

하루 열여덟 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면 다양한 자기 자신과 마주보게 된다는 저자. 세상에서 제일 착한 기사였다가 한순간에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기사가 된다고 합니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직장 생활을 하는 사회인이라면,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주부라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저도 아이들과 하루종일 부대끼다보면 천사였다가 악마였다가 정말 하루에 천당과 지옥을 여러번 넘나들면서 다양한 나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묵묵하고 먹먹한 우리 삶의 노선도

허혁의 <나는 그냥 버스 기사입니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버스기사님들의 노고가 느껴졌어요.

하루 열여덟 시간을 비좁은 공간에 앉아서 반복되는 노선을 시간에 맞춰 가야하는 육체적 피곤함과 서비스를 요구하는 승객과의 실랑이, 거리 곳곳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위험요소까지 정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녹초가 될 만큼 극한직업인 것 같아요.

버스기사는 운전원이면서 동시에 승무원이고 청소원이다. 운전은 기본이고 승무원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다. 운전하려고 취업했지 스튜어디스 하려고 온 것 아니다. 당신 같으면 하루 세 번 이상 혼자 사무실 청소 다 하고 수시로 민원인들 상대해가며 생명을 담보한 주 업무는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언제나 친절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들이 하나씩 해결되는데요.

왜 버스는 제시간에 오지 않고 늦게 오는지. 행선지를 물으면 왜 버스기사는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모르쇠로 가만히 있는지. 왜 버스정류장이 아닌 곳에 세우는지. 왜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지. 왜 급히 좌회전을 해서 몸을 쏠리게 하는지. 왜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지. 왜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는지.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동안 가졌던 불만과 짜증이 괜히 미안함으로 이해로 바꿔집니다.

모두의 삶에는 각자 나름대로의 사정과 방식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데 다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과 삶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니 그 각자의 사정과 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고, 하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우리네 일상이지 않을까 싶네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버스기사라는 직업의 내밀한 사정과 숨은 뜻을 알게 됐으니, 조금은 더 따뜻하고 다정한 시선으로 보게 될 것 같아요.

더 나아가 각자의 일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가까이 아파트 경비원이나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따뜻한 눈인사라도 해야겠어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호를 주는 영감님이 있다.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열렬하게 손을 저으신다.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은 인간의 장점이라고 본다.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했을 것이다. 하루는 외곽에서 시내로 들어오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안타니까 어서 가라고 손을 저어주고 있었다. (...) 그 모습이 하도 예뻐서 자발적으로 탄력을 죽이며 다가가 국군의 날 도열하는 군인처럼 거수경례를 멋지게 붙여줬다.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빠이빠이 하며 수줍게 웃어주는데 정말 일할 맛 났다.

나의 아주 작은 남을 배려하는 움직임 하나로  상대방이 하루종일 기분좋게, 신명나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할까요!

허혁의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자신의 일과 일상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조금은 투박하게 써 내려간 글로, 고단한 삶을 살고있는 우리의 아버지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었어요.

특별하지도 좋은일도 그렇다고 아주 나쁜일도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에 한 버스기사의 보이지 않았던, 알 수 없었던 삶의 한 부분을 알게 되면서, 버스를 탈 때 눈인사라도, 전화는 작은 목소리로, 벨은 미리미리 눌려주는 센스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오늘도 우리들의 삶을 싣고 같은 거리를 묵묵히 달리고 있는 세상 모든 기사님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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