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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 / 선명 스님의 그림 에세이  

책 제목에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한 단어만 들어도 콧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울컥해집니다.

20년 전 일입니다.
세상에서 의지하고 기댈 곳이 부처님뿐이었던 모녀는,
숨 쉬는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던 모녀는
어미젖을 찾는 아기 양처럼 오직 살고자 하는 의지로
"스님이 되거라" 스승님의 말 한마디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출가를 했습니다.

<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는 엄마와 딸이었던 두 사람이 주지스님과 스님이라는 쉽지않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서로를 의지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들을 잔잔하게 그려 낸 그림 에세이입니다.

엄마의 목숨값에는 내가 매달려 있었고,
나의 스님값에는 엄마가 얽매여 있었습니다.
(...)
내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고통을 견뎌내려 하지 않고 열 번, 스무 번 죽음을 택했을 겁니다.
엄마가 없었더라면 나는 힘듦을 이겨내려 하지 않고 열 번, 스무 번 스님을 그만두겠다 했을 겁니다.

엄마와 딸의 관계는 그 누구의 관계에서도 있지 않은 오묘한 여러 선이 있는 것 같아요. 엄마와 딸이면서 친구이면서 때론 같은 여자라는 동지이면서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기도 한 엄마와 딸만이 공감할 수 있는 강한 유대감을 가진 사이인 것 같아요.

이 책속에서도 주지스님과 제자스님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여느 엄마와 딸의 모습이 더 많이 그려지고 있는데요. 엄마의 잔소리와 딸의 말대꾸로 서로가 투닥거리는 모습, 밥을 먹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 듯 걱정하는 모습,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채는 거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을 보면 우리네 엄마와 딸의 모습과 똑같아 더욱 공감이 가고 마음이 짠합니다.

하루는 종일 마음 아픈 일이 있었습니다.
어찌 절까지 왔는지도 모르게 울고 울며 절에 왔는데, (...)
주지스님이 "저녁은?" 물어보셔서 "먹었어요."하고 말씀드리니
"먹긴 뭘 먹어..."하십니다.
힘든 얼굴을 보여드리지 않으려고 얼른 씻고 나와보니 밥상을 차려놓으셨습니다.
(...)
밥상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꺼내놓으셨습니다.
김, 단무지, 장아찌, 청국장.

선명스님의 <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는 한 스님의 이야기이기 전에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이 세상 모든 딸들의 마음을 울리는 책인 것 같아요. 엄마와 딸로, 스님과 스님으로, 그리고 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났으며 좋겠다는 선명 스님의 다짐 속에 엄마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 찡했습니다.

책 제목을 보면서부터 책을 읽는 내내, 또 다 읽고 책을 덮고 난 후에, 언제나 내 편이자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엄마가 생각나면서 많이 보고싶었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항상 그 자리에 언제까지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전화도, 잘 찾아가지도 않는 내가 너무 밉고 반성을 하게 되네요. 엄마는 항상 나보다 힘이 세고 강하다는, 참 어리석은 생각을 지금껏 하고 있는 내가 참 못났습니다. 아직까지 무거운 짐은 엄마가 더 빨리 내 손에서 가져가 자신이 들고 가시는 엄마를 보면서 정말 엄마는 엄마구나~아무리 딸이 잘한다고해도 엄마가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를 많이많이 생각하고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을 주어서 너무 고마웠던 책 <다음 생엔 엄마의 엄마로 태어날게>였습니다.

주지스님이 나이가 더 들고 힘이 더 빠지면
그때는 싸울 힘도 없으시겠지요.
허공에 대고 투정을 부릴 수도,
벽을 바라보고 심술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나를 받아주는 주지스님이 계시니
내가 호기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주지스님은 대장이니까, 항상 강하고 단단하시니까. 내 위에 계신 분이니까.'
그런 생각에 주지스님이 나이 들고 약해져가는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나는 몹시 억울한 사람 역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계시는 것이 안 계시는 것보다 좋은 줄만 알아라."

안 계시다는 것.
그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데
겁도 없이 심술을 부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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