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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category 추천도서 2019. 5. 24. 06:00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 / 한강

제15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
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이 작품을 쓰는 데에 8개월이 걸렸고, 유난히 힘들었던 작품이라고...실제로 한강 작가는 소설 속 k처럼 옛 직장 선배의 죽음을 3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고, 그 아픈 체험을 소설에 녹여낸 것이라고 한다.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은 한 잡지사 내 결혼한 여성의 부당한 퇴사와 그에 맞서 출근투쟁을 하는 여성의 힘겨운 싸움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그가 나에게 온 것은 자정 무렵이었다.

어느날, 주인공 k에게 이미 삼년 전에 죽어 유령이 된 옛 직장 남자 선배(임 선배)가 찾아온다.

K와 가족, 친구, 연인도 아니었던 그가 왜 온 것일까?

역시 고인이 된 여자 선배(경주언니)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온 것 같다.

K와 그, 경주언니 이 세 사람은 한 잡자사의 동료이다.

그런데 그 잡지사는 결혼한 여자는 회사를 그만둬야한다는 원칙 아닌 원칙이 있는 회사이다.

한 여선배가 결혼 후, 시작된 출근투쟁이 좌절되면서 그 투쟁에 적극적이었던 경주 언니와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던 그의 관계가 삐거덕거리고, 회사가 뒤숭숭할 때 그 여선배가 나간 자리에 k가 들어오게 된 것이다.

"임 선배가 어떤 역할을 해줄 거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 누구보다 입장이 난처했을 테니까. 그런데 알 수 없는 건 내 마음이었어.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사람들, 정말 열심히 싸워야 할 상대는 오너와 상사들인데, 이상하게 임 선배가 불편했어."
 
그후 k는 2년 후 회사를 떠나고, 경주 언니는 서른세 살까지 일하면서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은 체 기약없는 출근투쟁을 시작했고 마침내 회사가 승복했다.

하지만, 집단 따돌림으로 공황장애까지 얻게 된 경주 언니는 일 년을 버티고, 지방도시의 작은 신문사로 이직한다. 일 년을 버틴것도,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 아픈 몸으로 이직을 한 것도, 결혼 때문에 그만둔 것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않고 싶은, 다음 동료들을 위한 일이었다.

그는 한 시사잡지로 이직해 오 년쯤 일하다가 한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특집기사가 인쇄 직전에 삭제되는 일에 대한 항의를 위한 태업과 파업, 장기농성 끝에 새로운 잡지사를 만들어 그곳을 떠난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사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운 그와 경주 언니는 암과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가끔 우리가 벌레 같다는 생각을 해. 수백 년도 살 수 있는 것들 아래에서, 이렇게 짧게 꼬물꼬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다음 달, 다음 해, 아니 오 분 뒤 일조차 우린 알지 못하잖아. 그렇게 시간에 갇혀서 서로 찌르고 찔리면서 꿈틀거리잖아. 그걸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가 어딘가 있다 해도, 그가 우릴 사랑할 것 같지 않아. 우리가 상처 난 벌레를 보듯 혐오하지 않을까? 무관심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동정하지 않을까?

세상일에, 타인의 일에 우린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할까? 나만 아니면 되지 않나. 어떤 불의든 부조리이든 나와 상관없으면 내 삶의 평온을 위해서 한발 뒤로 물러나 무관심한 방관자가 된다.

하지만, 그 방관자도 그들의 고통과 힘겨움 투쟁이 있었기에 내가, 다음 세대가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음을 알기에 그 고통 밖에 있었던 사실이 죄스럽고, 나만의 평화가 미안해 그들을 애도하는게 아닐까.

거기서 멈췄다. 더 쓸 수 없었다.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그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이 무섭도록 생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 모두가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있을까? 나만의 평화가 아닌 우리 모두의 평화로운 시간...

그런가. 하지만 지금도 k씨는 평화로워 보여.
아니요. 불가능해요. 이 세상에서 평화로워진다는 건. 지금 이 순간도 누군가 죽고.
나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누군가 뒤척이고 악몽을 꾸고.
내가 입을 다물었는데 누가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 이를 악물고 억울하다고, 억울하다고 말하고.
간절하다고, 간절하다고 말하고.
누군가가 어두운 도로에 던져져 피흘리고,
누군가가 넋이 되어서 소리 없이 문을 밀고 들어오고,
누군가의 몸이 무너지고, 말이 으스러지고, 비탄의 얼굴이 뭉개어지고.

지금 내가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어가고, 누군가는 목숨걸고 싸우고, 누군가는 슬픔에 잠겨있고, 누군가는 고통 속에 이를 악물고 있고...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모두에게 구원의 손길과 평화의 시간이 왔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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