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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오즈의 의류 수거함

category 추천도서 2020. 3. 18. 06:00

오즈의 의류 수거함 / 유영민 장편소설

삶과 죽음은 한 끗 차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이 공존하고 있다. 막 울음을 터트리는 새 생명과 소리없이 생명이 꺼져가는 이들이 같은 시간대를 살고 있다. 그 죽음 속에는 '자살'이라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저버리는 안타까운 죽음이 있다. 그 중에서 청소년들의 '자살'은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자살을 하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럽고 무서웠을까?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자살을 하려는 이와 그것을 막으려고 하는 과정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의류 수거함을 중심으로 자살의 아픔을 공유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다.

주인공 도로시는 외고입시에서 떨어지고, 아버지의 눈치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자살까지 생각한다. 우여속절 끝에 자살 이행에는 실패하고 한국입시경쟁에서 벗어나고파 호주로 이민 갈 결심을 한다. 이민 갈 돈을 마련하기 위하여 밤이 되면 의류 수거함을 털기 시작하는 도로시. 그 일을 시작하면서 도로시는 '노숙자, 카스삼촌, 마녀님, 마마'인 어른친구를 만난다. 어느 날, 의류 수거함마다 붙인 번호 195번에서 도로시는 같은 사람의 물건인 듯한 수첩, 앨범, 많은 양의 상장, 공연티켓, 브로마이드가 들어있는 작은 상자, 일기장을 발견한다. 수첩 속에는 '맥베스'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유언으로 추청되는 글이 적혀있다.

"꺼져라, 꺼져라, 갸날픈 촛불이여! 인생은 걸어가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자기 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장한 듯이 떠들어대지만 지나고 나면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가련한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일장의 이야기, 소란으로 가득 찬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도로시는 어른친구들과 상의한 끝에 <맥베스> 책에 편지를 끼워 의류 수거함 위에 놓아두기로 한다. 또다시 의류 수거함에 뭔가를 버리려 왔다가 자신과 관련된 책을 보면 보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불과 몇 달 전 외고입시에 떨어져 자신을 비관하여 자살을 생각했던 도로시가 '195'의 자살을 막기 위한 간절하고도 절실한 마음으로 며칠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드디어 자살을 결심한 '195'에게서 답장이 온다.

정말 의류수거함을 터는 도둑이야?​

도로시와 '195'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어른친구들의 이야기도 하나씩 풀어지며 흥미와 감동이 더해진다.​

노숙자는 수의사였다. 같은 수의사인 아내와 결혼하고 이 년쯤 지나 구제역 사건이 터진다. 노숙자와 아내는 커다랗고 순박한 눈을 껌벅이는 소와 돼지에게 독극물 주사를 놓는 일을 하게 된다. 그로 인해 아내는 우울증을 겪다가 결혼기념일을 하루 앞두고 소와 돼지에게 놓았던 독극물 주사를 자신의 팔뚝에 놓고 세상을 떠난다. 노숙자는 그 후로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찾아다니며 위령제를 지낸다.

"처음 출발할 때만 해도 가볍게 소풍 가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긴 여행을 마친 기분이에요. 이번 여행, 정말 유익하고 뜻깊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숙자 씨의 깊이 감춰둔 이야기를 들려준 것도요."

"뭐, 어차피 우리 삶이 여행이잖아? 그 여행길에서 뭐라도 하나 제대로 건져야 할 텐데 말이야..."​

카스삼촌은 의류 수거함을 터는 탈북자다. 북한에서 인민교사였던 카스 삼촌은 북한은 '출신 성분'에 따라 삶이 결정되므로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며, 희망이 있는 남한으로 오게 된다. 그러나 희망이 아닌 남한은 '출신 성분' 대신 '돈'이라는 계급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뿐이다.

마마는 낡은 오피스 건물 옥상에서 '숲'이라는 식당을 한다. 십 년쯤 전에 수년간 연속해서 판매왕을 차지할 정도로 유능한 자동차 딜러였던 마마는 초겨울의 어느 날 중학생이었던 아들이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일에만 빠져 있던 마마는 아들이 그동안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분명히 아들이 신호를 보냈을텐데도. 장례를 마친 후 아들이 뛰어내린 건물을 찾은 마마는 아들이 뛰어내리기 전에 홀로 견뎠을 절망과 분노, 외로움과 두려움을 생각하니 그곳을 떠날 수가 없다. 그래서 마마는 항상 일이 바빠 아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해 준 적이 없던 것이 떠올라 식당을 그곳에 차리고, 식당을 찾는 모든 손님이 아들이라 생각하며 대접한다.

"난 말이야... 누군가 자살을 했다면, 그 죽음 자체보다도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망설이던 시간 때문에 그 사람이 불쌍하게 여겨져. 이 세상에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야.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럽고 외로웠을까."​

아버지의 실험용 더미(차량 충돌형 테스트 인형)로 살아온 '195', 더 이상 삶을 살아갈 용기가 없다는 '195'

도로시와 도로시의 어른친구들은 각자의 상처를 들어내고 서로를 보듬어주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195'와 소통한다. 과연 그들은 자살을 결심한 '195'를 다시 삶 속으로 들어오게 할 수 있을지...

누구나 크든 작든 자신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상처를 안으로만 꽁꽁 숨기면 곪아 터져버려 더 큰 상처가 된다. 보기 흉하더라도 밖으로 들어내 햇빛과 바람을 쐬어야 아물고, 딱지가 생겨야 저절로 떨어진다. 누군가가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내보인다는것은 나를 좀 도와달라는 뜻이다. 그럴때 모른척 하지말고 조용히 들여다 봐주는 것만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큰 힘이 된다. 그 조용한 나의 작은 몸짓 하나에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의류수거함의 의미는 뭘까?"

"나눔이지. 나누는 마음. 누군가에게 필요 없다고 여겨져 버려진 것들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 현재는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든 간에 의류수거함을 만든 초기 목적은 분명 서로의 것을 나누는 것에 있었을 거야."

<오즈의 의류 수거함>은 나눔의 의미를 가진 의류 수거함을 거점으로 한번씩 상처와 외로움을 겪어 이해력과 포옹력을 가지게 된 주인공 도로시와 어른친구인 노숙자, 카스삼촌, 마녀님과 마마씨가 버려진 강아지에서부터 폐지를 줍는 할머니, 고아원 그리고 195번에 이르기까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감싸주는 이야기로 그들의 따뜻한 마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훈훈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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