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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단종애사

category 추천도서 2018. 5. 14. 16:04

조선 제6대 왕
 

조선 제6대 왕(재위 1452~1455) 문종의 아들로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된 후

단종복위운동을 하던 성삼문 등이 죽음을 당하자 서인으로 강등되고 결국 사약을 받아 죽음을 당'단종'

 

단종애사를 읽기 전 먼저 세종,문종 대왕의 가계도를 알면 이해하기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세종의 가계도 ]

 

[ 문종의 가계도 ]

조선 제4대 왕 세종 - 제5대 왕 문종 - 제6대 왕 단종 -제7대 왕 세조(수양대군)

문종은 세종의 맏아들로 약 30년간 세자로 세종을 보필하다 1445년 세종이 병들자 그를 대신하여 국사를 처리하였으며, 1450년 왕에 올랐으나 몸이 약하여 재위 2년 4개월 만에 병사하였고, 곧 어린 세자 단종이 즉위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단종의 슬픈 역사가 시작된다.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는 단종을 낳고 이틀만에 죽고, 단종은 조모인 혜빈 양씨의 젖을 먹고 혜빈 양씨의 아들 영풍군과 같이 자라게 된다.
종을 슬픈 역사 속의 주인공으로 만든 인물은 그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아닐 수 없다.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아들로 문종의 동생, 단종의 작은 아버지가 된다.

수양대군이 일으킨 유정난!
이 계유정난이 일어난 계기를 보면 왕실에 수렴청정할 전왕의 왕후가 없었다. 세종의 비이자 단종의 조모인 소헌왕후는 세종대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는 앞서 말했듯이 단종을 낳고 이틀만에 세상을 떠났다. 세종의 후궁인 혜빈 양씨는 젖을 물러 자신의 아들보다 더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지만 그녀는 정실이 아닌 후궁이라 수렴청정 자격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필 왕의 숙부인 수양대군,안평대군 능력있고 야심만만한 이들이었으며 부왕의 통치기에 정치, 문화 사업에 참여한 과정에서 각자 만만치 않게 세력을 이루고 있었다.

계유년 1453년 10월 10일에 일어난 계유정난!
1453년(단종 1)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이자 원로대신인 황 보인, 김종서 등 수십 인을 살해, 제거하고 정권을 잡은 사건으로 권람, 한명회, 최항, 정인지, 신숙주(집현전 학사로 성삼문과 절친으로 문종에게 단종을 부탁받았으나 '숙주 나물'이라는 표현이 상징하듯이 절개를 저버리고 영달을 선택한 변절자이다)가 이 계유정난의 공신들이다.

마침내 단종은 겁에 질려 '어린 까닭에 나랏일을 볼 수 없어 영의정 수양대군에게 양위한다'는 교지를 내리고 상왕이 되어 임금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에 분개하고 일어난 사건 사육신!
'하나의 태양 아래서 두 명의 왕을 섬길 수 없다'는 절의파인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단종복위를 꾀하여 세조가 명나라 사신을 위로하는 연회를 여는데 그 연회 자리에 서는 별운검(임금 호위 무반)에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 유응부 등이 내정된 것을 기회로 단종복위를 노렸으나, 눈치 빠른 한명회와 김질이 역모발각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장인 정창손에게 역모사실을 알리고, 정창손이 세조에게 찾아가 알림으로써 단종복위는 물거품이 되고,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은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는 사건이 1456년(세조 2)에 일어났는데 이를 '병자사화'라 일컫는다.

병자사화로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보낸 후 사약을 내려 죽게 하였다.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귀양갈 때 모셨던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여 읋은 시조가 있다.

천마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단종은 200여년 후인 숙종때 왕위를 다시 찾아 단종이라 하였다.

단종이 영월객사에서 지은 시이다.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에 가면 단종의 애잔한 삶을 한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한번 가보기를 권합니다.
저는 2년전 여름에 아주 무더운ㅠ 여름에 가족들이랑 다녀왔답니다.
그때 설명 해 주시는 고마운 분이 계셔서 아주 많은 것을 듣고 왔는데(기억이 ㅠㅠ)
청령포 주변을 흐르는 서강을 배를 타고 청렴포로 가면 소나무가 먼저 반겨줄 거예요.
수많은 소나무 중에 관음송이라는 소나무가 있는데 600년이 넘었다고..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때 이 소나무에 앉아 쉬면서 울었다고..
너무 애달프다
'엄흥도 소나무'도 볼 수 있어요~
엄흥도라 하면 단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후 시신은 동강에 버려졌고, 그 누구도 어명을 어기고 시신을 거두는 자가 없을 때 영월 호장인 엄흥도가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달게 받겠다"며 가족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여 본인 엄씨 문중산에 몰래 암장하고 숨어 버리죠. 세월이 200여년이 지나 숙종 때 드디에 묘호를 단종이라 하여 종묘에 부묘하고 왕으로 봉하여 장릉이라 하였다.
악이 있으면 선이 있듯,
간신이 있으면 충신이 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을 겪은 비운의 왕 단종!
얼마나 무섭고 슬프고 외로웠을까?

영월에서 단종문화제가 매년 4월 말쯤에(4월 27일~39일)열리니, 아이들과 함께 다녀오면 역사공부도 되고, 소나무 숲에서 힐링도 하고,
기회가 되면 내년에 한번 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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