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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 장편소설 '종의 기원'

"도덕적이고 고결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깊은 무의식 속에서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이 숨어 있다. 사악한 인간과 보통 인간의 차이는 음침한 욕망을 행동에 옮기는지, 아닌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정유정의 또 다른 '악인'을 만나볼 수 있었던 소설 「종의 기원」, 역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들로 섬뜩하고 오싹하게 책 읽는 내내 긴장감과 박진감으로 꼭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 소설이었다.
역시 실망 시키지 않은 정유정 작가의 작품이다.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 될 놈이야.'

3년 만의 가족 여행이자 열 한번째 결혼 기념일을 자축하는 여행지 탄도에서 아빠와 한 살 터울인 형 유민이를 사고로 잃은 후, 정신과 의사인 이모와 엄마의 감시 아래 매일 꾸준히 을 먹고 있는 유진이는 유망한 수영선수였다.

한 살 터울인 형 유민이보다 유일하게 잘 했던 것이 수영이었다. 유진이는 물이 좋았다. '물 속이 지상보다 자유로웠고, 수영장이 학교나 집보다 편안했으며, 물 속은 어머니가 들어올 수 없는 곳, 온전히 나의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었다. 내가 원하든, 뭐든.'

초등학교 2학년 봄부터 시작한 수영에서 재능을 보이더니 학교 대표선수가 되어 금메달까지 따게 된다. 곧 전국 규모의 유소년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아빠와 형의 사고로 유진이에게 변화가 일어나는데, 첫째 이모네 병원을 가게된다. 둘째 약을 먹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유진이의 삶에는 엄마를 조정하는 이모와 그 조정에 따라 유진이를 감시하는 엄마가 항상 따라다닌다.

'내 인생은 두 여자가 깔고 앉은 방석이나 다를 바 없었다. 숨 막히는 그 궁둥이를 치워달라는 부탁 같은 건 통하지 않는다.'

약을 먹지 않으면 발작을 일으키는 '간질'이란 병을 가진 유진이는 고등학교 1학년 3월 전국수영대회에 참가한다. 약이 들어있는 가방을 잃어버린 유진은 약을 먹지 않은 채 경기를 치르게 되는데, 약을 안 먹으니 어느 때보다 깊은 잠을 잤고 두통이 없는침을 맞으니 몸은 가볍고 기분은 유쾌하고 뭔가를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솟구쳤으며 모처럼 하루가 평화로웠다. 그런 덕에 1500미터 예선에서 자신의 기록에서 7초나 앞당기는 동시에 대회 신기록까지 세운다. 
약을 먹지 않아서인지 광기에 가까운 컨디션으로 대회가 끝날 때까지 '위험한 광기'를 즐긴다.

이로 유진은 약을 먹지 않으면 자신의 컨디션이 유년시절처럼 태어난 그대로 내 자신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과 약을 중단해도 발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는다.

한달 후,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선발대전을 겸한 동아수영대회에서 유진은 1500미터 예선에서 첫 발작을 일으킨다. 수영선수를 그만 둘 위기가 찾아오고, 물속을 질주하고 싶은, 유일하게 물속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인생의 전부인 수영을 그만둘 수 없는 유진이는 엄마에게 변명도 해보고 호소도 하고 항의도 해 보고 싫어하는 이모에게까지 찾아가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면서 엄마를 설득해 달라는 부탁을 했지만 기어코 엄마는 선수 등록을 말소시켜버린다.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온 유진은 해진의 방에서 우연히 들춰보게 된 책 속의 한 문단으로 인해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해진이는 한 살 많은 유진이의 친구로 네 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술주정뱅이인 할아버지와 사는 소년가장으로 죽은 유진이 형 유민이를 많이 닮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양자로 형의 빈자리에 들어오게 된다.)

26살이 되도록 규칙주의자 어머니의 통제와 감시하에 살아가는 유진이에게 '약 끊기'는 사막 같은 삶에 스스로 내리는 단비였다.

하지만 '발작'이라는 후폭풍을 치러야 한다.

유진은 약을 중단하면 '벌떡증',힘이 남아돈 나머지 근육이 부릉부릉 시동을 걸 때마다 집을 뛰쳐가 벌이는 '개병'이 나타난다. 가족들 몰래 나어두운 밤길을 뛰다가 '발작전구증세'가 나타나면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발작을 준비하고 기다린다.

그날도 개병이 도져 엄마가 잠든 틈에 옥상을 통해 빠져나갔다가 비릿하면서 쇠 맛이 나는 단내로 발작 경고를 느낀 유진이는 집으로 돌아와 세 번째 발작을 치르고 코를 골고 잠이 든다.
잠이 깬 유진이는 비릿함 피냄새와 침대, 이불, 베개 온통 피로 물들여있고 자신의 옷에도 응고된 핏물이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모습에 놀란다.
도대체 밤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던 것일까?

1층으로 가보니 여기저기 핏자국과 고여있는 핏물 속에 반듯하게 누워있는 여자, 가슴 위에 양손을 모으고, 긴 머리채를 얼굴에 덮어쓴 여자가 누워있다. 어머니였다.
기억이 없다. 어젯밤 2시간 30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면도칼을 쥐고 있는 나! 내가 어머니를...도망가면 된다.
아니다. 알아야 한다. 내 안에 나라고 믿는 나 말고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지, 그 '누군가'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모르고는 세상 속에서 살아갈 길이 없다.

진실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경악을 금하지 못한다.

 


유진은 뇌 편도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아이였다. 먹이사슬로 치자면 포식자
" 유진이는 포식자야.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로데터."

유진이의 '발작', 매일 먹어야 하는 '리모트'라는 약, '발작의 전구증세였던 '비린내', 엄마와 이모의 지나친 '감시' 이 모든 것이 간질이 아닌 사이코패스였다니...

유진이 7살 때 그린 그림, 가족여행에서 형과 아빠 사고의 진실, 군도신시 젊은 여자 살인 사건, 엄마, 이모의 죽음, 해진이의 죽음까지, 이 모든 것이 유진이가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일까?

사이코패스는 타고난 것인가? 살면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태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임신을 하면 좋은 것만 먹고, 듣고, 말하고..온갖 정성과 사랑으로 열 달 동안 품고 새 생명을 얻는다.
유진이는 태생적 사이코패스이다. 태어나기도 전에 자신의 목숨을 위협받은 유진이는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자신 먼저 챙겨야하지 않았을까?

"혜원에 따르면, 유민과 유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인지의 방식'이었다. 유민이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는 성격이라면, 유진은 모든 채널을 오롯이 자신에게만 맞춘다고 했다. 따라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도 하나뿐일 거라고 했다. 나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16년 동안 어머니와 이모에게 자신의 삶을 지배당하고, 약은 자신의 인생이라는 풀밭에 풀어놓은 뱀으로 생의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번번히 발목을 물어뜯고 주저 앉게 만들었다면 당신은 온전히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 수 있었겠는가?

태생적 사이코패스든 후천적 사이코패스든 우리의 본성 안에도 악인 '어두운 숲'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대처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반사회적 행동, 공감 능력과 죄책감 결여, 낮은 행동 통제력, 극단적인 자기 중심성, 기만 등과 같은 특성을 포함하는데, 이런 성향을 높게 나타내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또는 정신병질자라 부른다."

이런 사이코패스가 반드시 범죄자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직장 같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점 개인주의와 능력중심주의가 된 현대 사회에서 자기 중심적이고 인간 관계에서도 이익과 손해를 따지는 계산주의가 만연하며,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유진과 같은 존재가 생겨나지 않을까?

16년 동안 정체불명의 약을 매일 먹고 엄마, 이모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면서 하고 싶은 일도 못한 채 그저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살 수 있도록, 사람 속에서 살되 사람과 어울려 살지 않도록, 26살이 되어도 귀가 시간이 9시이고 술 한잔 편히 마실 수 없는 자신의 삶을 자신이 아닌 다른 이가 이끄는대로 살아가야 하는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는 '종의 기원'
결국 '포식자'로 주변인들을 다 잡아먹고 자신만 살아남은 유진!
유진이는 평범한 한 청년으로 돌아 있을까?

"오늘 아침 항구에 내리기 직전까지 머리 없는 짐승처럼 살았으므로 세상으로 돌아오긴 했으나 다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들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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