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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시인 / 동주

category 추천도서 2018. 6. 30. 21:45
안소영의 "시인/동주"

뜻하지 않게 영화'동주'를 보게 되었는데 처음이 아닌 중간부터 봐서 보고나니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 가서 부랴부랴 책을 빌려와 읽게 되었다.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가슴이 아리고 먹먹하고 뭔가 울컥함이 솟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분노, 울분, 억울함, 애잔함, 통곡, 고통...아무튼 여러 감정들이 뒤섞이면서 지금 내가 정말 행복한 시대에서 살고 있구나!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 '윤동주' 선생의 시는 국어 교과서에도 나오고 시험에도 출제되어 시 한 두 편 정도는 다는 아니더라도 중간중간 몇 구절은 읊을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 속에 담긴 윤동주의 절절한 마음과 고뇌는 알지 못한 채 시험 때문에 무작정 외운 내가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시인 윤동주가 왜 '민족시인'이라 불리우는지...
우리의 마음을 울린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또 다른 고향」, 「쉽게 진 시」정말 주옥같은 시들을 많이 남기고 가셨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것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에서 태어나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만 27년 이 개월도 안 되는 정말 짧은 생을 살고 가신 시인/동주

일제 강점기 중에서 가장 어두운 시대 1930~1940년대 민족말살통치하에 창씨개명, 황국신민서사 암송, 신사참배, 징용, 징병, 위안부까지 정말 암흑기 속에서 윤동주가 그의 벗과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나라를 걱정하고 서로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동주와 그의 동생 일주와의 별 이야기에서는 애틋한 형제간의 정이 나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시인 동주는 일본군에게 강력히 맞서 싸우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잊지 않고 일제의 핍박 속에서 우리 글로 시를 쓴 것이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독립운동을 한 시인 동주!
일제의 감시하에 마음대로 글도 시도 편지도 일기도 자유롭게 쓰지 못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에게 이런 귀한 서정시를 남기고 간 시인 동주!
두렵고 외로운 길, 자신을 죽음으로 내 모는 길인 걸 알면서도 우리 말로 시를 쓴 시인 동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부끄러워한 시인 동주!

참회록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으로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시인 동주는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지만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압수한 동주의 시를 일본어로 번역하라고 하는 순간 그는 바짝 당기고 있던 의식의 고삐를 놓아 버린다.
끝내 생체실험의 알 수 없는 주사로 시인 동주는 차가운 옥사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 힘을 내어, 그의 심장이 토해 낸 말~
"어머니!"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생전에는 시인이라 불리지 못한 무명의 시간을 보내야 했던 윤동주는 그의 벗 처중과 병욱이 고이 지켜낸 소중한 시로 인해 1948년 1월에 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한다.

한 젊은 청년이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암울한 시대에서 우리의 정신, 마지막 자존심인 우리말로 써 내려간 시 한 구절 한 구절은 우리 민족에게 자부심과 희망과 위안을 준다.

이 책은 시인 동주뿐만 아니라 그의 고종 사촌이자 동갑내기 친구로 생도 같이 마감한 독립운동을 한 송몽규를 비롯하여 소학교 친구인 문익환, 연희 전문 학교 친구인 처중, 유영, 삼달, 후배인 정병욱 등 암흑의 시대 속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아파하고 위로하면서 우정을 나누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을 다시 한번 느끼고, 그 힘든 시대에서도 꿈을 꾸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 나간 그 시대를 산 청춘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

시인/동주, 단면적 지식 몇 가지만 알고 있었던 내가 그나마 좀 더 깊게 좀 더 내면적인 숨어있는 생각을 알게 된 계기가 되어 뿌듯한 시간이었다.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말하고 듣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국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모국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며, 삶을 배워 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모국어 속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얼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