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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진이, 지니

category 추천도서 2019. 7. 10. 11:16
진이, 지니 / 정유정 장편소설

2019년 기해년, 황금 돼지해도 벌써 반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정말 세월이 화살같다는 말을 실감하며, 하루, 일주일, 한달이 눈깜짝할 새에 흘러가고 있다. 하루가 새로울 것 없는,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이 계속되니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무료한 시간들 속에서 오랜만에 재미있고 가슴 뭉클한 책 한권을 만나게 됐다.

<종의 기원> <28>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등 화제의 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정유정 작가가 3년 만에 <진이, 지니>라는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이번 소설은 기존의 책에서 볼 수 없었던 판타지라는 장르를 가미해서 색다른 느낌이었다. 역시 정유정 작가의 책은 탄탄한 소재와 내용, 매력적인 인물들, 흡입력 있는 문장으로 단숨에 책 한권을 읽게 만드는 마력의 작가이다. 너무 재미있고 긴 여운을 남긴 책이다.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 던져진 두 개의 영혼

영장류센터에서 침팬지 책임사육사인 진이는 퇴사 마지막날에 침팬지 구조요청을 받고 스승과 함께 인동호 주변에 있는 별장으로 가게 된다. 구조대원들을 피해 나무 위로 간 침팬지를 구조하기 위하여 진이는 파인애플을 들고 사다리를 타고 침팬지에 접근한다. 비를 맞으며 겁에 질린 채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침팬지는 침팬지가 아닌 보노보였다. 진이는 보노보를 알아본 순간 잊으려고 했던 지난 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라 아찔했지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노보를 구조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구조 과정에서 보노보는 마취 총을 맞고, 의식을 잃은 보노보를 안고 스승이 운전하는 차의 조수석에 탄다. 스승은 보노보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게 어떠냐며, '지니'라는 이름을 제안한다. 평소와 다른 스승이라 의아했지만 왠지 '지니'라는 이름이 나쁘지 않아 지니의 이름을 가만히 읊조린다. 그때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온 고라니를 피하려다 차량이 미끄러지면서 가드레일을 박는 사고가 난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데...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두 남녀의 만남

킨샤사 한 기념품 가게에 밀렵꾼들에게 잡힌 보노보가 자신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눈빛을 외면한 채 도망쳐 나온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진이'

동물의 감정을 파악하는 천부적인 자질이 있는 '진이'는 그 때 그 보노보를 구하지 않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끝내 퇴사를 결정한다.

한편 서른 살이 넘도록 취업준비생으로 집에서는 천덕꾸러기로 참다못한 아버지로에게 내쫓겨 오갈 데 없는 노숙자가 된 '민주'

세상을 소리로 읽는 버릇이 있는 즉, 소리의 액면가보다 뒤에 숨은 감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는 민주는 모차르트만큼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 민주에게 10년 전, 공익 요원이었던 시절에 독거 노인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일이 주어졌다. 그때 자신을 힘들게했던 해병대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날처럼 음식배달을 하는 민주는 해병대 할아버지 집 앞을 지나갈 때 아픈 신음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냥 지나쳐버린다. 음식배달을 다 하고 마지막으로 해병대 할아버지 집으로 갔지만, 할아버지께 음식을 전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이다. 자신이 지나치지 않고 방문을 열어봤더라면 돌아가시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민주는 고통스러워한다.

보노보의 구원의 눈빛을 외면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는 '가해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진이'와 해병대 할아버지의 구조 신호를 외면한 죄책감을 트라우마로 새긴 채 괴로워하는 '민주'가 동물 보노보를 통해 만나고, 소통하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성장하여, 더 나은 '진이', '민주'가 된다.

"넌 누구야?
나는 진이야. 이진이.
나는 친구야. 네 친구, 진이."

하나의 육체에 두 개의 영혼..
동물 보노보의 육체에 '진이'와 '지니'의 두 개의 영혼이 교차한다. 지니의 무의식을 통해 진이는 지니의 과거와 과거 속에서 겪었던 일들을 알아가면서, 인간의 잔혹함을 알게된다. 진이 또한 지금은 지니의 삶에 쳐들어온 침입자일 뿐이다. 진이는 지니의 삶, 보노보의 삶을 위하여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로 기꺼이 돌아가려한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 같이 살기 위해서, 또 다른 삶을 위해서...  

나는 내게 돌아가야 했다. 다 교차가 오기 전에, 내 몸이 엔진을 완전히 멈추기 전에, 지니에게 지니의 삶을 돌려줘야 했다. 그것이 타당한 선택이었다. 나아가 지니를 본래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지니가 떠나온 곳. 나고 자란 자신의 세계, 밀림 속으로. 이는 내가 수행해야 할 삶의 마지막 의무였다.

                                                                  

<진이, 지니>를 읽으면서 동물학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키우던 반려동물을 버리거나, 스트레스해소로 마구 때리거나, 고양이가 싫어 길고양이에게 약을 먹여 죽이는, 정말 끔찍한 일들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기쁨, 슬픔, 아픔, 고통 등 인간이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을 동물들도 다 느낀다. 말만 못할 뿐, 아니 우리가 못 알아 들을 뿐,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으로 키웠으면 한다. 충동적이고 심심풀이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했으면 좋겠다.

정유정의 <진이, 지니>를 통해 인간과 동물간의 교감,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상대가 나와 다를지라도 서로의 상처를 알아주고 보듬어주고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다. 자신의 생을 포기하면서까지 보노보의 삶을 지켜주려는 진이의 사랑이 엄마의 사랑 같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하지만 진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고, 진이도 새로운 삶을 살기위한 죽음이기에 마냥 슬프지만은 않다. 정유정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어두운 인간의 악을 그렸는데, 이번 작품은 따뜻하고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엄마를 생각나게 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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