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산문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더욱 활발해지고,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VR 이니 AR이니 하는 가상현실 기술 얘기도 있지만, 인류는 직접 짐을 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 계획을 짜는 사람, 짐을 꾸리는 사람,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공항으로 가는 사람, 벌써 여행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영하 작가를 알게 되고, 풍부한 지식에 놀라고, 말솜씨에 매혹되어 그의 작품을 찾아 읽고, <여행의 이유> 산문집도 읽게 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저자의 기억 깊은 곳 중 하나인 <추방과 멀미>는 2005년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중국 체류 계획을 세워 중국으로 갔지만, 준비 못한 비자로 인해 추방 당한 이야기이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은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날렸다. 누가 보아도 최악의 여행으로 기억될 일이지만 작가는 그리 나쁜 여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게 된 진귀한 경험은 언젠가 책을 쓸 소재가 될 것이고, 여행이 너무 계획대로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이야기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획에 없던 돌발상황은 오히려 저자에게 행운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그렇다. 언제나 여행이 자신의 계획대로 척척 이루어지진 않는다. 불가피한 천재지변이나 갑자기 몸에 탈이 날 수도 있고, 같이 간 이에게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최악의 기분으로 남은 날들을 흘려보낼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계획에 없던 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으로 자신의 삶이 바뀔 수도 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처음 계획했던 여행의 목적, 계획이 틀어진다해도 괜찮다.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휴식일 것이고, 어떤 이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행이든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줘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행에서 꼭 무엇을 얻으려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하는 것보다 여행 그 자체를 즐기고, 마음껏 누리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있을까.
저자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근심, 걱정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것이 여행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즐기고, 힘들어도 또 가게 되고 가고 싶은 것 같다. 잠시나마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제일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지구로 여행을 온 것이다. 여행을 와서 각자 다른 여러가지 일을 겪고, 어떤이는 조금 일찍, 어떤이는 그 어떤이보다 조금 늦게 떠나는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여행 - 일상 - 여행의 고리를 잇는
아홉개의 매혹적인 이야기
조금 있으면 여름 휴가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갈 것이다. 국내로 해외로 저마다의 여행의 이유는 다르겠지만 여행이 주는 기대와 설렘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일상에서의 탈출구로 여행만큼 좋은 건 없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다시 반복되는 일상 속으로 돌아올 힘을 얻는다. 인류의 유전자 속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인터넷 시대가 되면 수요가 줄어들 거라던 여행은 더욱 활발해지고, 여행을 대체할 수 있는 VR 이니 AR이니 하는 가상현실 기술 얘기도 있지만, 인류는 직접 짐을 꾸리고, 자신이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행 계획을 짜는 사람, 짐을 꾸리는 사람,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 공항으로 가는 사람, 벌써 여행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알쓸신잡'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영하 작가를 알게 되고, 풍부한 지식에 놀라고, 말솜씨에 매혹되어 그의 작품을 찾아 읽고, <여행의 이유> 산문집도 읽게 되었다.
꽤 오래전부터 여행에 대해 쓰고 싶었다. 여행은 나에게 무엇이었나, 무엇이었기에 그렇게 꾸준히 다녔던 것인가, 인간들은 왜 여행을 하는가,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하고 싶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그러니까 내가 들인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보면, 나는 그 무엇보다 우선 작가였고, 그다음으로는 역시 여행자였다. 글쓰기와 여행을 가장 많이, 열심히 해왔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쓸 기회가 많았지만 여행은 그렇지를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정말 많은 것들이 기억 깊은 곳에서 딸려 올라왔다.
저자의 기억 깊은 곳 중 하나인 <추방과 멀미>는 2005년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중국 체류 계획을 세워 중국으로 갔지만, 준비 못한 비자로 인해 추방 당한 이야기이다. 여행은 아무 소득 없이 하루 만에 끝나고, 한 번 더 중국을 왕복하고도 남을 항공권 값은 추가로 지불했으며, 선불로 송금해버린 숙박비와 식비는 날렸다. 누가 보아도 최악의 여행으로 기억될 일이지만 작가는 그리 나쁜 여행이 아니라고 말한다.
난생 처음으로 추방자가 되어 대합실에 앉아 있게 된 진귀한 경험은 언젠가 책을 쓸 소재가 될 것이고, 여행이 너무 계획대로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이야기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획에 없던 돌발상황은 오히려 저자에게 행운이었던 것이다.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너무 고심하지 않는 편이다. 운 좋게 맛있으면 맛있어서 좋고, 대실패를 하면 글로 쓰면 된다.
그렇다. 언제나 여행이 자신의 계획대로 척척 이루어지진 않는다. 불가피한 천재지변이나 갑자기 몸에 탈이 날 수도 있고, 같이 간 이에게 사정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럴때마다 실망하고 좌절하고 최악의 기분으로 남은 날들을 흘려보낼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계획에 없던 일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으로 자신의 삶이 바뀔 수도 있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처음 계획했던 여행의 목적, 계획이 틀어진다해도 괜찮다. 또 다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의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난 휴식일 것이고, 어떤 이는 새로운 경험과 배움을 얻기 위해 여행을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여행이든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다. 그것이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줘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여행에서 꼭 무엇을 얻으려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려고 하는 것보다 여행 그 자체를 즐기고, 마음껏 누리면 그것보다 좋은 게 어디있을까.
저자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근심, 걱정을 잠시 미뤄둘 수 있는 것이 여행인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즐기고, 힘들어도 또 가게 되고 가고 싶은 것 같다. 잠시나마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해방되고 싶어서..
<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제일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인생이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어디에선가 오고, 여러가지 일을 겪고, 결국은 떠난다.
우리는 지구로 여행을 온 것이다. 여행을 와서 각자 다른 여러가지 일을 겪고, 어떤이는 조금 일찍, 어떤이는 그 어떤이보다 조금 늦게 떠나는 것이다.
긴 여행을 하다보면 짧은 구간들을 함께 하는 동행이 생긴다. 며칠 동안 함께 움직이다가 어떤 이는 먼저 떠나고, 어떤 이는 방향이 달라 다른 길로 간다. 그렇게 헤어져 영영 안 만나게 되는 이도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그렇게 모두 여행자라고 생각하면 떠나보내는 마음이 덜 괴롭다.
여행 - 일상 - 여행의 고리를 잇는
아홉개의 매혹적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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