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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category 추천도서 2019. 8. 9. 09:42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 이기호

부담없이 편하게 읽기에는 짧은 단편 소설이 제격이다. 그 짧은 단편보다 더 짧은 콩트같은 책이 있어서 망설임없이 집어들었다. 처음 들어본 작가의 책이기에 큰 기대없이 읽어내려갔는데 웬걸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짧은 글 속에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났다, 웃겼다가 울렸다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다가 자책하고 반성하게도 하는, 짧은 책 한권으로 삶의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은 기분이다.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
짧았던 사랑일수록 치열하게 다퉜거늘

지금부터 제일 인상 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비치보이스>은 스물 두 살 백수인 남자 세 명이 입대하기 전에 젊음을 만끽하기 위패 해수욕장에 갈 계획을 짠다. 모두 백수이기에 편도 차비만 손에 쥔 채 강원도에 있는 해수욕장에 도착해 알바를 해서 유흥비를 벌 작정이다. 마침 해수욕장 인근 사설 주차장 주차관리 요원 일자리를 구한다. 그러나 33도가 훌쩍 넘는 한낮에 주차관리 일을 한다는 게 그리 호락하겠는가. 한 친구는 더위를 먹고 한 친구는 다리에 화상을 입은 채 사흘 만에 일을 그만둔다. 그들에게 남은 건 상처와 팔만 원뿐.

남의 돈이 내 주머니에 들어오기가 그리 쉬울까. 라고 어렸을 때 어른들이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인생살이가 내 뜻대로, 계획대로 맞아들어가면 얼마나 좋으려나. 그 세 친구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지 생각해보는 값진 경험이었을 것 같다.

<미드나잇 하이웨이>는 사채까지 손을 댄 한 남자가 더 이상 살아야 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리고, 소주와 번개탄을 사서 자신의 차 안에서 생을 끝내려고 한다. 그때 차창을 두드리며 담뱃불 라이터 좀 빌리자고 한 남자가 손을 내민다. 라이터를 가지라며 주고 다시한번 마음을 다잡고 죽음을 맞이하려는데 또 그 남자가 차창을 두드린다. 고맙다는 감사의 표시로 사만팔천원에 파는 간고등어를 삼만원에 주겠다는 남자. (웃으면 안되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 아무 대꾸없이 잠깐 노려보다가 다시 죽음의 공간인 자신의 차 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잠시 후 똑똑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뭡니까! 왜요! 왜 자꾸 이러시는 겁니까! 네?"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는 남자를 향해 그 남자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씨익 웃으면서 말한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울 텐데... 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볕도 좋은데."

요즘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생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겠지만 그렇게 소중한 생명을 놓아버리는 건 삶을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병으로 생을 접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나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 등)이들에게 미안한 일이 아닐까 싶다. 좀 더 관심있게 가까이 있는 이들을 살피고 그들의 힘듦을 알아주고 보듬어주면 서로가 서로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손에 쥔 라이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외에도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층간소음문제를 다룬 <한밤의 뜀박질>은 층간소름을 넘은 한 아이의 밝은 표정과 건강한 정신에 가슴 뭉클한 이야기다.

민수는 남자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할머니 앞에서 최선을 다해 이리저리 도망쳐 다니는 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1302호 남자의 아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밝은 표정이었다. 민수는 말없이 그 아이의 표정을 따라 지으며 자신의 딸 또한 저런 표정으로 자라나길 속으로 바라보았다.

<불 켜진 순간들>은 고등학교 영어 교사로 이십 구년을 성실히 일했고,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 없이 자신의 부인과 아이들에게 부끄럼없이 최선을 다해 살다가 지난 달 교통사고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간 남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 기대감을 갖고 자신에게 떨어질 명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깔끔한 시트가 깔린 침대와 냉장고, TV, 물기 하나 없는 욕실이 있는 방으로 안내되었다. 하지만, 며칠째 그는 깜깜한 방에서 지내야했다.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벌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도대체 이게 뭡니까?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한테 이럽니까?"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선생께 벌을 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일까?
그에게는 요양병원에 계신 노모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어머님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당신은, 나는, 지금 부모님께 어떤 아들이며 딸일까?

"선생은 어머님께 얼마 만에 한 번씩 찾아갔습니까? 딱  그 주기에 한 번씩 선생 어머님 마음에도 불이 켜졌겠지요."

이기호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작가 특유의 재치와 익살로 아무렇지 않은 일을 아무러운 일로 만들고, 때론 아무러운 일을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드는 묘한 재주를 부리고 있다.

웃음 속에 날카로운 가시와, 울컥 차오르는 슬픔이 있고, 슬픔 속에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과 빛이 보이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에 무료하여 한바탕 신나게 웃거나, 펑펑 울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뒤끝은 아리고 쓰리는 책이며, 많은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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