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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시선으로부터,

category 추천도서 2021. 3. 18. 17:23

시선으로부터,  / 정세랑 장편소설


따스한 봄날에 읽은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진행자 심시선씨, 유일하게 제사 문화에 강경한 반대 발언을 하고 계신데요. 본인 사후에도 그럼 제사를 거부하실 건가요?
심시선 그럼요, 죽은 사람 위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봤자 뭐하겠습니까? 사라져야 할 관습입니다.
김행래 바깥 물 좀 드셨다고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전통문화를 그리 우습게 여기고 깔보면 안 돼요.
심시선 형식만 남고 마음이 사라지면 고생일 뿐입니다. 그것도 순전 여자들만, 우리 큰딸에게 나 죽고 절대 제사 지낼 생각일랑 말라고 해놨습니다.
진행자 아, 따님에게요? 아드님 있으시잖아요.
심시선 셋째요......? 걔? 걔한테 무슨, 나 죽고 나서
모든 대소사는 큰딸이 알아서 잘할 겁니다.
김형래 몹쓸 언행은 아주 골라서 다 하시는군요.
심시선 선생 생각이랑 내 생각이랑 어느 쪽이 더 오래갈 생각인지는 나중 사람들이 판단하겠지요.
p 9-10

심시선 여사의 발언이 아주 파격적이며 속시원하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남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는 그녀가 위대해 보인다.
명절, 제사 땜에 맘고생 몸고생하는 여자들을 대변해주니 그야말로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다.

첫 장부터 아주 시원하니 술술 잘 읽힐 것 같은 좋은 예감에 한껏 들뜬다.

"우린 하와이에서 제사를 지낼 거야."

첫째 딸 명혜의 선언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기일 저녁 여덟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길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p83

시선으로부터,
는 심시선 여사가 돌아가신지 십 주기가 된 기념으로 한국과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 딸 손녀 손자들이 딱 한번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하와이로 떠난다.

두 번의 결혼으로 가족 관계가 조금 복잡한 가족들이 그녀가 젊은 시절에 살았던 하와이에서 모이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딱 한번 지낼 제사를 위해 특별한 것을 준비한다. 각자 하와이를 자유롭게 여행하면서 자신에게 의미있고 소중한 것 하나를 찾아 제사상에 올리는 것이다. 그들은 경쟁 아닌 경쟁으로 저마다 그 특별함을 찾아 나선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들 심시선 여사와 자신만이 가졌던 추억 하나씩을 들춰내면서 자신의 상처와 아픔을 돌아보고 삶의 의미도 생각하게 된다.

제사상에 올릴 특별함을 찾는 동안 삶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삶의 소중함은 더해지는 것을 느끼며 저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성장해 나가는 심여사 가족들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은 "20세기를 살아낸 여성들에게 바치는 21세기 사랑이다."라고 했는데 엄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 여사처럼 20세기의 고난한 삶을 지치지 않고 때론 유연하게 때론 강하게 사신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에게 바치는 우리 후손들의 사랑과 존경이 담겨있다.

엄마이자 할머니인 심시선 여사의 뿌리에서 나온 딸들과 손녀들은 그녀처럼 그 어떤 시선으로부터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방식대로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책 한 권이 있다.
이금이 작가의 <아로하, 나의 엄마들>이다.
일제 강점기 시대에 사진 결혼으로 어린 나이에 하와이로 시집 간 우리네 엄마들의 삶을 그려 낸 작품이다.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다.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내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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