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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홀 (The Hole)

category 추천도서 2019. 6. 13. 11:16
(The Hole) / 편혜영 장편소설

도서관에 갔다가 제목에 끌려 빌려온 책이다. '구멍, 구덩이' 왠지 어두컴컴하고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하면서도 막상 들여다보기에는 내키지 않는, 왠지 들여다보면 빨려들어가 나오지 못할 것 같은 '홀'(Tho Hole)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기대하면서 첫 장을 넘겼다.

소설은 주인공 '오기'가 병원에서 눈을 뜨면서 시작된다. 아내와 여행을 가던 중 교통사고로 아내는 죽고, 오기는 겨우 눈만 깜빡일 수 있는 전신마비 상태로 깨어난다. 정말 한 순간에 깊고 깊은 구멍 속으로 한 남자의 인생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 구멍 속에서 빠져나오려면 주인공의 이름처럼 오롯이 '오기'와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

3개월간 집중 재활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지지 않은 상태로 오기는 아내와 함께 살던 정원이 있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이 집이라는 공간이 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이다.

첫번째로 이 집은 사고 이전 오기와 아내 사이에 아무런 문제 없던 시절에는 평화롭고,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며,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었다. 무리해서 산 집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둘의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서 이 공간의 갖는 이미지는 조금씩 달라진다. 언젠가부터 정원 만들기에 집착하는 아내의 변화로 인해 정원은 아내만의 공간이 되어버리고 집은 점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오기의 사고 이후에는 아내가 아닌 장모와 함께하는 이 집이라는 공간은 완전히 변해간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오기에게 이 집은 오기를 가둬버리는 공간으로 폐쇄적이고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아내가 가꾸던 정원의 식물들이 오기를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고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존재가 된다.

한때 미래를 꿈꾸며 안락했던 공간이 자신을 집어삼키는 공포의 공간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 홀이라는 소설은 끝을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긴장을 놓을 수 없게 한 책이다. 과거와 현재의 일들을 교차해 가며 한 남자의 삶의 불행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과거의 삶이 보여지면서 책을 읽고 있는 나의 지나온 삶을 한번 돌아보게 한다.

'홀'을 읽으면서 《스스로 제 무덤을 판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주인공 오기가 어느 날 생각치도 못한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미가 되고, 이상해진 장모로 인해 끝을 알 수 없는 홀 속으로 빠진다는 것보다는  오기 자신이 지난날 이미 제 스스로 조금씩 조금씩 파 놓은 홀에 때가 되어서 빠진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홀(Tho Hole)이라는 책으로 편혜영이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이 뜻밖의 행운을 잡은 것 같다. 기대 이상으로 너무 좋았고, 여운도 길게 남은 작품이었다. 편혜영 작가의 또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기억에 남는 문장>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p28

아내가 돌볼 수 없게 된 후 정원의 나무와 풀과 꽃은 죽어갔지만 집 뒤쪽의 덩굴식물은 더욱 무성해지고 흡착력이 강해져서 정면 쪽 벽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뻗어오고 있었다. 오기의 창 방문으로도 바람이 불 때면 담쟁이의 커다란 잎이 흔들리는 게 다 보였다. 오기는 그 푸른 잎을 불안하게 올려다봤다. 얼마 후에는 오기의 창을 잠식해 시야를 막아버릴 것만 같았다. p.91

어쩌면 인생이라는 걸 어렴풋이 안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삶을 살아온 동시에 잃어온 것인지도 몰랐다  간혹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매사 충실했지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잃어가는 기분. 그래서 더 악착같이 굴 때가 있었다. p176

어떤 가정도 낙관적이지 않았다. 이 순간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끝없이 반복될 것 같았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 p184~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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